2004년 12월 부인의 출산을 한 달여 앞두고 있던 법무법인 화우의 정재웅 변호사(36·연수원 31기)는 초음파 검사로 태아의 성별을 알려줄 것을 의사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담당의사는 '의료인은 태아 또는 임부에 대한 진찰이나 검사를 통해 알게 된 태아의 성별을 임부 본인,그 가족, 기타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옛 의료법 제19조의2 제2항 규정을 들어 태아의 성별을 알려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에 정 변호사는 "출산을 한 달 앞둔 태아의 성별까지 알려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기본권 침해 등을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2008년.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들녀석은 이제는 4살배기 꼬마가 되었고 정 변호사는 지금 독일에서 연수 중이다.
더 이상 아들의 성별은 궁금하지 않지만 정 변호사는 헌소를 취하하지 않았다.
제도를 바꾸는 일에 누군가가 나서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씨도 같은 헌법소원을 냈다.
그는 2005년 5월 산모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줬다가 적발돼 면허 6개월 정지처분을 받자 행정소송을 냈고 이어 2005년 11월 "의료인의 직업활동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오랜 남아선호 사상에 따른 낙태를 금하기 위해 1987년 도입된 태아 성감별 금지 규정을 두고 '기본권을 침해한 과잉금지'라는 입장과 '남아선호사상이 여전히 지배적인 사회에 필요한 규정'이라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10일 위 두 사건을 병합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 공개변론에는 대한의사협회,보건복지가족부 등 각계각층의 이해당사자들이 참가했다.
⊙ 태아 성감별 금지 규정은 기본권을 침해한 '과잉금지'
태아성감별 금지가 부당하다는 측도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무분별한 낙태를 방지하겠다는 법 규정의 취지는 인정한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 남아출산 비율이 인위적으로 과도하게 높아지는 사회적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이 규정은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이들은 태아 성감별 규정이 목적은 정당하지만 수단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최소로 침해하는 수단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낙태는 우리 형법에 규정된 낙태죄 조항으로 얼마든지 예방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성감별 금지조항으로 인해 낙태의 의도가 전혀 없는 예비부모까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알권리와 행복추구권을 침해받게 됐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또 이 조항이 태아의 성장 정도를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막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 변호사를 대리하는 박상훈 변호사는 "임신 8~9개월째에 접어들면 아무리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부부라 할지라도 임부의 생명과 건강에 문제가 있어 현실적으로 낙태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며 "태아가 어느 정도 큰 이후부터는 성별을 알려주는 쪽으로 규정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도 태아 성감별 금지 규정이 지나치다는 의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