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성감별이 허용되면, 정말 낙태가 늘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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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성감별이 허용되면, 정말 낙태가 늘어날까?

오춘호 기자2008.04.08읽기 6원문 보기
#태아 성감별 금지#낙태#헌법소원#기본권 침해#남아선호사상#낙태죄#의료인 직업활동 자유#과잉금지

2004년 12월 부인의 출산을 한 달여 앞두고 있던 법무법인 화우의 정재웅 변호사(36·연수원 31기)는 초음파 검사로 태아의 성별을 알려줄 것을 의사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담당의사는 '의료인은 태아 또는 임부에 대한 진찰이나 검사를 통해 알게 된 태아의 성별을 임부 본인,그 가족, 기타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옛 의료법 제19조의2 제2항 규정을 들어 태아의 성별을 알려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에 정 변호사는 "출산을 한 달 앞둔 태아의 성별까지 알려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기본권 침해 등을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2008년.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들녀석은 이제는 4살배기 꼬마가 되었고 정 변호사는 지금 독일에서 연수 중이다. 더 이상 아들의 성별은 궁금하지 않지만 정 변호사는 헌소를 취하하지 않았다. 제도를 바꾸는 일에 누군가가 나서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씨도 같은 헌법소원을 냈다. 그는 2005년 5월 산모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줬다가 적발돼 면허 6개월 정지처분을 받자 행정소송을 냈고 이어 2005년 11월 "의료인의 직업활동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오랜 남아선호 사상에 따른 낙태를 금하기 위해 1987년 도입된 태아 성감별 금지 규정을 두고 '기본권을 침해한 과잉금지'라는 입장과 '남아선호사상이 여전히 지배적인 사회에 필요한 규정'이라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10일 위 두 사건을 병합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 공개변론에는 대한의사협회,보건복지가족부 등 각계각층의 이해당사자들이 참가했다. ⊙ 태아 성감별 금지 규정은 기본권을 침해한 '과잉금지'태아성감별 금지가 부당하다는 측도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무분별한 낙태를 방지하겠다는 법 규정의 취지는 인정한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 남아출산 비율이 인위적으로 과도하게 높아지는 사회적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이 규정은 필요하다는 것.그러나 이들은 태아 성감별 규정이 목적은 정당하지만 수단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최소로 침해하는 수단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낙태는 우리 형법에 규정된 낙태죄 조항으로 얼마든지 예방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성감별 금지조항으로 인해 낙태의 의도가 전혀 없는 예비부모까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알권리와 행복추구권을 침해받게 됐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또 이 조항이 태아의 성장 정도를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막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 변호사를 대리하는 박상훈 변호사는 "임신 8~9개월째에 접어들면 아무리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부부라 할지라도 임부의 생명과 건강에 문제가 있어 현실적으로 낙태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며 "태아가 어느 정도 큰 이후부터는 성별을 알려주는 쪽으로 규정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도 태아 성감별 금지 규정이 지나치다는 의견이다.

의협 측은 "임신 말기 낙태의 위험성은 크게 줄어들므로 유아용품 준비에 필요한 정보를 주는 차원에서 임신 28주 이후부터는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다. 또 태아 성 감별 금지조항을 어긴 경우(징역 3년 이하형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가 낙태(징역 2년 이하형)보다 형량이 무거운 게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규정은 또 현실과도 괴리가 있다. 적지않은 산부인과 의사들은 "엄마를 닮았다(딸이다)" "파란색 옷을 준비해야겠다(아들이다)" 등의 우회적이고 암시적인 방법으로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 낙태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금지조항 필요태아감별 금지 조항이 합헌임을 주장하는 보건복지가족부 측은 낙태시술이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횡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통상 태아의 낙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한 태아의 성감별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낙태율은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고,연간 임신중절 건수는 30만건이 넘는다. 또 국민의식이 바뀌고 남녀불평등이 개선됐다고는 해도 셋째 아이의 경우는 출생성비가 여자 100명당 남자 121.8명에 이를 정도로 선택출산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에 비춰볼 때 이 조항을 폐지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게 보건복지부 측 주장이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남아선호사상,남녀출생비 등 국가적 문제를 고려할 때 아직까지는 임신기간에 관계없이 태아의 성 고지를 금지해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말했다. 서울행정법원도 2005년 "어차피 출산을 하겠다는 부모라면 성별을 몰라서 입는 피해라고 해봐야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출산 준비에 불편함을 겪는 정도"라며 "낙태를 방지하고 남녀 성비 불균형을 바로 잡는 공익성이 있기 때문에 위헌이라 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 성감별 금지 규정은 중국과 우리나라밖에 없어세계적으로 태아 성감별 금지규정이 있는 국가는 전통적으로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우리나라와 중국뿐이다. 강력한 인구억제 정책으로 두 자녀도 두기 힘든 중국은,성감별이 허용되면 낙태율 증가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2005년 출생 성비가 여자 100명에 남자 118명에 이를 정도로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하기 때문.남아 선호로 인한 성비의 지나친 불균형은 여성 학대,신부 부족으로 인한 매매혼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낳는다. 그래서 중국은 질환 등 진료 목적 이외의 태아 성감별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아들·딸을 가리지 않는 부부들이 늘었다. 2006년 남아와 여아의 성비는 106 대 100으로 자연 성비에 가깝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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