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세계적인 금융의 전설 중 한 명이자 ‘퀀트 킹(quant king)’이라 불리우는 제임스 사이먼스 회장이 방한한 바 있다. 세계적인 금융전문가인 사이먼스 회장의 방한은 관련 분야 종사자 사이에서는 좋은 강연 기회를 제공해 준 반면, 일반인들에게는 퀀트라는 가장 전문적인 직업의 세계를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퀀트(Quant)’는 한 마디로 계량금융시장 분석가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퀀트는 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등 주로 수학적인 도구들을 바탕으로 각종 경제·금융 데이터에 근거하여 금융시장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투자 방식 내지 금융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말한다. 오늘날 금융 산업에서는 물리학이나 전기공학 못지않게 수학적 방법론이 널리 쓰이는 것은 바로 이들 퀀트가 주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 다양한 금융회사에서 퀀트가 활동하고 있으며, 세부 활동 부서 역시 리서치팀, 상품개발팀 등 여러 부서에 걸쳐 근무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공공부문 내지 대기업에서도 퀀트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퀀트’는 업계에서 가장 비싼 연봉을 받는 직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수학 도구 통해 주관적 편향성 제거
금융회사들이 높은 연봉을 지불하면서 이들 퀀트를 고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퀀트를 통해 투자의 합리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투자할 때 순간의 감정 등에 휘둘려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향이 많다. 손실이 뻔한 상황에서도 본전이 생각나 투자금액을 회수하길 주저하거나 자신이 믿고 싶은 내용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들을 그렇지 않은 근거들에 비해 더욱 크게 해석하는 경향도 있다.
또한 우리는 같은 비율이라 하더라도 이익에 비해 손실을 더욱 크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주관적 편향성들은 투자를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퀀트는 이러한 주관적 편향성을 제거해 줄 수 있는 대안이 되어준 것이다. 퀀트들은 다양한 수학적 도구들을 통해서 투자자의 개인적 판단에 근거하지 않고 계량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투자 프로그램을 구축한 뒤 특정 신호가 오면 자동적으로 투자를 수행하는 시스템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투자 방식은 투자 과정에서 유발되는 다양한 주관적 편향성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퀀트들은 수학, 물리학, 컴퓨터 공학과 같은 수학적 도구들에 익숙한 사람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오늘날 금융계에서 수학적 방법론이 각광받게 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것은 바로 구조적 실업이다. 구조적 실업은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사양 산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일자리를 잃는 현상이다. 음악시장이 MP3 위주로 바뀌면서 LP나 CD를 제작하던 업체가 차츰 문을 닫고, LP와 CD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게 됐다. LP와 CD를 만들고 판매하던 사람들이 MP3 음원 관리업체에서 새로 일자리를 얻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금융 분야에서 수학의 도입은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스푸트니크 쇼크’로 호시절 맞아
20세기 중반 미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을 육성하고 이들에게 다양한 연구 과제를 맡겨왔다. 주로 군사적인 이유에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 정부에 고용된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군수물자 관리·암호 해독·레이더와 원자폭탄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참여해 성과를 냈다. 미국 정부는 종전 이후에도 군사 및 우주 기술 개발을 위해 거액의 자금을 투입해 연구를 수행했다.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하면서 ‘스푸트니크 쇼크’라 일컬어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미국 정부는 예산 지원액을 늘렸다. 이 과정에서 대학과 연구소들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을 위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호시절은 끝이 났다. 1973년 군대를 철수할 때까지 10여년간 계속된 북베트남과의 전쟁으로 미국 정부는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게다가 오일 쇼크 이후 미국 경제도 침체의 늪에 빠졌다. 소련과의 데탕트(화해) 분위기로 냉전 분위기까지 완화되자 미국 정부는 대학과 연구소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출을 줄이게 된다. 더 이상 대규모로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1950~1960년대 대학을 다니고 박사학위를 딴 많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처지로 내몰리게 됐다. 이들은 대학이든 연구소든 자리가 나는 곳이면 어디서든 단기간의 임시 직책이라도 맡아 일하였다. 그나마 일자리를 얻으면 다행이었다. 학계에서 급료가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이들은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려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