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해 소득 많은 사람에 벌금?
세금,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나

열심히 일해 소득 많은 사람에 벌금?

현승윤 기자2006.02.13읽기 5원문 보기
#세금 효율성(efficiency)#세금 형평성(equity)#인두세(head tax)#조세 형평성#마거릿 대처#주민세(community charge)#조세감면#게리 베커

정부가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금 체계를 개편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잣대로 판단해야 하나.가장 중요한 기준은 세금 제도의 '효율성(efficiency)'과 '형평성(equity)'이다. 비효율적인 세금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려 국민 소득을 하락시키고,세금징수마저 어렵게 만든다. 특정 계층에 세금을 과도하게 부과하는 '형평성 없는 세금 체계'는 국민의 불만을 폭발시켜 정부마저 전복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기준의 하나는 '세금의 단순성(simplicity)'이다. 세금 제도가 지나치게 복잡하면 세금 계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비용이 들고,세금을 걷는 행정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단순한 세금 제도가 좋다는 얘기다. ◆가장 효율적인 세금은 인두세경제학자들은 의외로 인두세(head tax)를 '효율성이 가장 뛰어나고 걷기도 쉬운 세금'으로 꼽는다. 경제활동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세금을 부과하므로 시장가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매출액을 계산할 필요가 없어 세무행정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예컨대 100원짜리 빵을 하나 팔 때마다 10원씩 세금을 부과하거나 빵가게 주인에게 일정 비율의 소득세를 부과할 경우 빵가격은 개당 100원 이상으로 필연적으로 올라간다.

반면 인두세는 모든 사람이 경제활동 여부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내야 하기 때문에 상품 판매 등 시장가격 질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인두세는 그러나 형평성 측면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재산이나 소득에 관계없이 일정액을 내야 하는 인두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지방세 체계를 개편하면서 인두세의 일종인 주민세(community charge)를 1990년 도입했었다. 이에 대해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방에서 그해 초부터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런던에서는 폭력사태까지 나타났다.

당시 영국의 세금불복종 운동은 공권력으로 진압됐으나 대처 총리는 국민의 지지를 상실해 그 해 말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대처의 뒤를 이은 보수당 메이저 총리는 1991년 주민세를 폐지했다. ◆조세 형평성의 한계형평성은 '세금 부담이 국민에게 공평하게 배분돼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일한 금액의 세금을 내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 세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거나 소득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가치판단이 형평성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다. 언뜻 듣기에 명확해 보이는 형평성에도 그러나 한계가 있다.

연소득 1억원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전문직 두 명이 있다고 가정하자.두 사람의 능력은 동일하지만 한 사람은 열심히 일해 연간 1억원을 벌고,다른 사람은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기 위해 주 3일만 일하기 때문에 연간 4000만원을 번다고 치자.능력 기준으로 보면 두 사람에게 동일한 세금을 부과해야 하지만,소득 기준으로 보면 1억원을 번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게 된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노동을 더 많이 하는 사람에게 벌금을 매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은 공평한 것인가.자산을 열심히 굴려 이익을 많이 낸 사람과 자산 운용을 게을리 해서 이익을 많이 내지 못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이 얼마만큼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정의로운가 하는 질문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특정계층 겨냥한 세금감면은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비과세 또는 세금감면 규정을 도입한 것은 대부분 농민이나 어민,중소기업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계층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이에 따른 비용은 사회 전체로 분산되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은 그 무게를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200개가 넘는 조세감면 규정이 우리나라에도 생겼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는 "규모가 작고 조직화가 잘 된 집단일수록 정치적인 과정에서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얻어내려는 혜택의 비용이 넓게 분산돼 전체 인구에 큰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이 접전을 치르는 경우 소규모 집단의 이익챙기기는 더욱 쉬워진다. 정부가 비과세·감면규정에 손대는 것은 정당하고 바람직한 시도다. 그러나 그 방향은 세금특혜를 줄이면서 효율성과 공평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지,세금을 더 걷는 편리한 수단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

미국이나 유럽국가 등의 세금부담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다. 각종 부담금 등 준조세까지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세금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세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장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공평한 세금 제도는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조세 형평성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시장왜곡을 최소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세제를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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