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모방해 산업화…전쟁보상금 덕에 창업 열풍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영국 모방해 산업화…전쟁보상금 덕에 창업 열풍

김동욱 기자2022.10.06읽기 5원문 보기
#후진성 가설#후발자의 이점#2차 산업혁명#보불 전쟁#전쟁보상금#D-은행#카르텔#크루프

(63) 2차 산업혁명과 독일의 부상(下) 크루프 가문은 2차 산업혁명시기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을 일궜다. 사진은 1999년 티센과 크루프가 합병해 생긴 티센크루프 본사. 한경DB 독일의 약진 원인으론 여러 가지가 꼽힌다. 첫 번째가 ‘후발자의 이점’이다. 일찍이 알렉산더 거셴크론이 독일과 러시아의 산업화 사례를 관찰한 뒤 설파한 것이 ‘후진성 가설’이다. 후진 사회들은 역설적으로 ‘대도약’이 가능했다는 것인데, 앞선 사회의 경험에서 배우거나 선발 사회가 개척한 기술과 지식을 공짜로 또는 값싸게 획득할 수 있어 빠르고 효율적인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논리다.

독일은 영국 공장을 모방해 자본과 노력, 시간을 줄일 수 있었던 데다 신기술도 자유롭게 적용했다. 독일 은행들이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뿐 아니라 기업 설립과 운영, 감독, 혁신의 촉진에까지 밀접하게 관여한 것도 특징이다. 소위 ‘D-은행들’로 불린 다름슈타트방크, 디스콘토게젤샤프트, 도이체방크, 드레스트너방크가 1870~1913년 보유한 자산의 가격은 6억마르크에서 175억마르크로 급증했다. 이는 독일 은행들이 보유한 산업자본 주식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보불 전쟁 후 독일에 유입된 막대한 전쟁보상금 덕에 창업과 투기 열풍이 분 것도 한몫했다.

배상금으로 철도 같은 기반시설 투자가 늘었고, 새로운 제철기술을 활용한 철도를 이용해 시장에 제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게 가능해졌다. 실제 당대인들은 이때를 ‘창업시대’로 부르기도 했다. 여기에 독일 특유의 카르텔(기업 연합) 구조가 효율적으로 작동한 측면도 있다. 2차 산업혁명 시기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가들의 사례도 이 같은 독일적 발전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소위 ‘대포왕’이라고 불린 알프레드 크루프가 대표적인 경우다. 크루프 가문은 16세기부터 에센지역의 유력 가문으로 그의 아버지는 영국과 ‘주강(cast steel)’ 분야에서 경쟁하면서 정력을 낭비한 것으로 유명했다.

알프레드 크루프가 가문의 사업을 넘겨받은 것은 1826년이다. 초기에는 식기류 제품 생산을 위한 기계와 제분기용 주강을 제작하며 돈을 벌었다. 이후 독일에 철도가 깔리면서 그의 공장도 활황을 맞았다. 열차가 고속으로 달려도 깨지지 않는, 이음새 없는 바퀴를 독일에서 처음으로 제작하는 데 성공했고, 1840~1850년대 독일에서 진행된 초기 철도 건설은 크루프 사업의 근간이 됐다. 이와 함께 증기선용 스크루 같은 선박용 부품도 같이 생산했다. 크루프가 국제적 명성을 얻은 것은 1851년 영국 런던 크리스털팰리스(수정)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였다.

당시 크루프가 제작한 6파운드 야전포가 전시됐는데 포신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던 동 대신 주강이 쓰였다. 박람회 직후 이집트와 러시아, 홀란드, 영국, 스위스, 스페인, 오스트리아에 대포를 수출하게 됐다. 막상 고국인 프로이센에선 제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훗날 빌헬름 1세가 되는 빌헬름 왕세자의 도움으로 1859년 300개의 주강 포신을 장착한 포 주문을 프로이센 육군으로부터도 받게 됐다. 그리고 그중 160개의 포가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사용됐다. 전장에서 크루프 제품의 우수성을 확인한 프로이센은 독일제국의 무장책임자로 크루프를 선정하고, 크루프의 사세도 일취월장하게 된다.

이에 따라 1887년 크루프는 유럽 대륙 최대 산업체가 된다. 2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스위스에서부터 중국, 일본, 몬테네그로까지 각지 공장에서 연간 2만3000개의 대포를 제작했다. 또 매일 1000개의 포탄과 500개의 철도차량 바퀴, 스프링 및 각종 부품을 생산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민족주의 열풍을 타고 크루프는 독일 민족의 영웅으로까지 묘사된다. 비스마르크와 결탁했던 초대형 유대 금융자본 블라이히뢰더도 부의 규모에 있어선 크루프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하지만 실상 크루프는 과학기술 개발이나 예술 지원, 빈민 구제에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돈만 된다면 고국인 프로이센의 적에게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최신형 무기를 팔아치웠다. NIE 포인트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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