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밀어붙인 태국 군부…30년 퇴행한 민주주의
글로벌 뉴스

개헌 밀어붙인 태국 군부…30년 퇴행한 민주주의

임근호 기자2016.08.18읽기 5원문 보기
#쿠데타#개헌#민주주의 퇴행#양극화#경제성장률#외국인 투자#탁신파#국가평화질서회의(NCPO)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7일 태국 국민은 군부에 힘을 실어주는 개헌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며 안정을 택했다. 2006년 탁신 친나왓 총리가 축출된 이후 10여년간 계속된 혼란을 끝내는 게 민주주의를 되찾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태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도 불확실성이 줄었다며 찬성 61.35%로 개헌이 확정된 선거 결과를 반겼다. 하지만 국민투표 나흘 만에 터진 연쇄 폭탄 테러는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불만을 누르며 억지로 안정을 얻는다 해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개헌 찬성이 짧은 기간 안정을 가져올 순 있지만 태국 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해결하지 못해 정치적·경제적 도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개헌은 금이 간 벽에 벽지를 바른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태국 민주주의 1980년대로 퇴행태국 민주주의를 1980년대 수준으로 퇴행시켰다는 비난을 받는 새 헌법은 올해 3월 마련됐다. 2014년 5월20일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탁신 전 총리 지지파가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추진한 일이다.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2011년 총리가 된 것을 비롯해 탁신파는 2001년 이후 치러진 다섯 번의 총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태국이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바뀐 1932년 이후 20번째 헌법인 이번 개정 헌법은 2017년 총선 이후 5년 동안 이어질 민정 이양기에 상원의원 250명 가운데 244명을 최고 군정기구인 국가평화질서회의(NCPO)가 뽑도록 했다. 나머지 6명도 군과 경찰 고위직으로 채워진다. 지금까지는 2007년 개정 헌법에 따라 150명 중 76명은 직선제로, 74명은 상원선임위원회의 임명으로 뽑았다. 총리 선출 방식도 바뀐다.

이전 헌법에서 총리는 하원의원이어야 하며 하원 다수당이 선출했다. 개정안에선 전체 하원 500석 중 5% 이상 의석을 얻은 당은 의원이 아닌 사람을 포함해 3명까지 총리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하원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상·하원 합동회의로 선출한다. 군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가 위기 시에는 군 사령관, 경찰청장 등이 포함된 위기관리위원회가 행정과 입법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했다. 양극화에 따른 갈등의 불씨 여전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유권자가 개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군부는 반대 의견을 억눌렀다. 최소 120명의 반대파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TV 토론회도 열리지 않았다. 찬성표를 던진 태국 중산층은 그저 혼란이 끝날 수 있기만을 바랐다. 군부가 탁신의 부정부패만을 부각시켰기 때문에 의회에서 탁신파가 제거되면 세상이 깨끗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혼란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5년 동안 탁신파가 줄곧 선거에서 이긴 것은 방콕의 기득권에 대한 소외 지역 사람들의 불만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방콕과 수도권엔 6700만명의 태국 인구 중 17%만 살고 있지만 공공 지출의 4분의 3이 집중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정부의 1인당 교육비 지출은 다른 지역보다 4~5배, 의료 지출은 12배 많다.

수도권 지역 소득이 다른 지역보다 5~7배 높은데도 그렇다. 태국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외 지역 민심은 무료 의료, 저금리 대출, 쌀 보조금 등 선심성 정책을 편 탁신 전 총리에게 쏠렸고, 기득권 유지에 위협을 느낀 군부·왕실·엘리트층 연합이 쿠데타로 맞서는 일이 반복됐다. 2014년 0.8%로 떨어진 태국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8%로 뛰어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3.0%, 2017년 3.2% 성장을 전망했다. 5~6%대인 동남아 다른 주변국보다 여전히 낮다. 개헌 후 정치 안정으로 외국인 투자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가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와 FT는 전했다.

태국의 투자 매력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건비 상승, 노동가능인구 감소, 지체된 교육 수준과 기술 숙련 부족이 문제다. 올 상반기 태국이 받은 외국인직접투자(FDI)는 3억4700만달러로 작년 상반기 대비 92% 줄었다. 최대 투자국인 일본도 베트남과 캄보디아, 미얀마 등 인건비가 싼 주변국으로 투자를 옮기는 추세다. FT는 “태국은 기술로는 한국과 일본에 밀리고, 인건비로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뒤떨어진다”며 “수출 주도 제조업 붐이 끝난 지금 태국은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고 지적했다.

임근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eigen@hankyung.com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국민소득 늘어도 취업난·양극화로 체감지수 여전히 낮아
커버스토리

국민소득 늘어도 취업난·양극화로 체감지수 여전히 낮아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진입했으나 가계부채 증가와 양극화 심화로 국민들이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고용 부진까지 겹쳐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적 개혁 없이는 스페인·그리스처럼 다시 2만달러대로 후퇴할 수 있다며 규제 개혁, 노동시장 개혁, 기업 혁신을 통한 경제성장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2019.03.14

가장 인상깊었던 기사는?
경제

가장 인상깊었던 기사는?

주니어 생글생글 93호는 연말 결산 특집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올해 어린이 독자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커버스토리와 기업가를 선정했습니다. 주요 내용으로는 젤리 전문 기업 하리보의 창업자 한스 리겔과 그의 아들을 소개한 '내 꿈은 기업가'와 2040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의 전망을 다룬 '쏙쏙 경제 뉴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3.12.21

지난주 News Brief

작년 4분기 성장률 5.2% 外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5.2%로 6분기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연간 성장률도 4.0%로 상향 조정되었다. 한편 해외여행 급증으로 서비스수지 적자가 13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저소득층 지원용 연탄 보조금이 사우나와 비닐하우스 등으로 새나가는 등 정책 집행의 구멍이 드러났다.

2006.01.25

인구 구조가 변하면 경제가 바뀐다
커버스토리

인구 구조가 변하면 경제가 바뀐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경제성장률을 크게 낮추는데, 한국개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가 1% 줄어들면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 감소한다. 한국은 2018년 고령사회 진입 이후 2030~2050년 평균 성장률이 현재 5%에서 2%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일본이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1990년 이후 경제 활력을 잃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현재 한국은 향후 5년간 부양 부담이 최소인 최적의 인구구조 시기에 있어 이를 활용한 정책이 필요하다.

2011.03.30

커버스토리

우리나라 인구가 예상보다 빨리 줄어든다는데…

한국의 인구가 기존 전망보다 빨리 줄어들어 올해부터 사망자가 출생아를 초과하는 자연 감소가 시작되며, 외국인을 포함한 총인구도 2029년(또는 출산율 하락이 가팔라질 경우 내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인구 감소는 경제성장률 저하와 함께 고령화를 심화시켜 생산연령인구의 부양 부담이 급증하게 되는데, 2067년에는 근로자 한 명이 고령인구 한 명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2019.04.04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