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량과 물가 중간엔 '파급경로'가 존재한다 "우리가 통화지표를 버린 것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를 버렸다. (We didn't abandon the monetary aggregates,they abandon us.)"
약 15년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로 재직했던 제럴드 보위(Gerald Bouey)는 1980년대 캐나다가 통화정책의 운영체계 중 하나인 통화량 목표제(monetary targeting)를 포기할 당시 위와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통화정책의 운영체계(monetary policy framework)는 통화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방식과 절차에 관한 제도적 틀로 정의하는데,일반적으로 지난주에 공부했던 정책수단 · 운용목표 · 중간목표 · 최종목표 이 4가지로 구성된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은 물가안정을 최우선적인 최종목표로 채택하고 있으며 정책수단과 운용목표 또한 국가별로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통화정책의 운영체계는 중간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다.
통화량 목표제는 통화량의 증가율을 중간목표로 해 최종목표를 달성하려 하는 통화정책의 운영체계를 의미하며,1970년대 후반에 많은 국가들이 이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많은 국가들이 통화량 목표제를 채택한 이유는 1960년대부터 경제학계에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을 필두로 하는 통화주의자들(monetarists)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화주의자들은 물가와 통화량 사이에 안정적이며 밀접한 관계가 성립하므로 통화량의 조절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고 역설했는데,이들의 주장은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화폐적 현상이다(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란 프리드먼의 말로 요약이 된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길고 다양한 경로를 거쳐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통화량 목표제 하에서는 결국에는 통화량이 물가를 좌지우지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에 중간의 파급경로(transmission mechanism)에 대해서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1970년대에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통화량을 조절함으로써 인플레이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통화량 목표제는 곧 결함을 드러냈다.
1980년대부터 금융혁신과 금융규제 완화 등으로 통화량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어하는 것이 사실상 힘들어졌고,통화량과 최종목표인 물가 사이의 관계도 불안정해졌다.
보위 총재가 통화지표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말했던 것은 이러한 상황 변화 속에서 통화량 목표제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통화량과 물가 간의 관계가 불안정하다면 통화정책의 여러 파급경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여러 경로들 중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금리경로인데,이자율의 조정은 가계와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어 총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은 아마도 그동안 TV나 신문 등을 통해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를 변경했다는 소식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정책금리란 매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이자율을 의미하는데,현재의 정책금리는 한국은행이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거래를 할 때 기준이 되는 단기이자율인 '한국은행 기준금리(약칭 기준금리)'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해 공표하면 금융기관들 사이의 자금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주어 시장금리 또한 하락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