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채 파편화된 가족의 현실
⊙ 가족의 실상
밤 9시 뉴스의 시청률을 좌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8시30분쯤 방영되는 일일연속극이다.
이 시간은 대개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이 거실에 앉아 TV를 함께 보거나 과일 등을 나눠 먹으며 바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잠시나마 휴식을 얻는 때이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 연속극의 소재들은 가족 구성원을 모태로 한 서사구조를 이루게 마련이다.
연속극에서 다뤄지는 공간도 거실이나 주방,안방과 같이 집안이 주를 이룬다.
요즘 들어서는 소재의 선정성 문제가 거론되기는 하지만 일일연속극 속에 등장하는 가족은 대부분 단란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비쳐지거나 적어도 이를 지향하는 듯 그려진다.
한마디로 일일연속극은 스위트홈의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연속극 속의 가족은 위기나 갈등도 가족구성원 전체가 지혜롭게 해결하려 노력한다.
특히 이때 가장의 역할은 중요하게 부각되며,집안 어른들 역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때가 많다.
문제는 방송이 현실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과연 연속극 속의 가족을 보편적인 가족 모델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적어도 이호철의 「닳아지는 살들」 속의 가족만큼은 드라마 속 스위트홈과는 무관한 듯 보인다.
이호철의 「닳아지는 살들」은 「무너앉는 소리」 3부작 중 제 1부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이들 연작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가족 해체 문제와 부조리한 인간 삶의 모습을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그는 가족을 단란하고 다정하며 상처를 서로 위로하는 스위트홈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속력도 지니지 못한 채 분열과 해체로 점철되어 피상적인 사회적 구성단위로 전락한 가족을 제시한다.
한국 사회가 전쟁과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가족의 부침이 심했던 역사적 경험을 지닌 것을 반추할 때 작가 이호철의 문제의식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 공허한 기다림
작품 「닳아지는 살들」은 일일연속극처럼 주요 공간이 거실과 방 안으로 설정되어 있고 등장인물도 집안 사람들로 한정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연속극처럼 스위트홈의 신화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은행 고위직을 은퇴한 칠십을 넘긴 집주인은 얼마 전 정신을 놓고 거실에 앉아 20년 전 북으로 시집 간 큰딸을 기다린다.
전쟁과 분단으로 큰딸의 귀환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생각할 때 그의 정신은 현실과 완전히 유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