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 해저드'…양심·책임의 실종
커버스토리

'모럴 해저드'…양심·책임의 실종

신동열 기자2013.03.07읽기 3원문 보기
#모럴 해저드#노블레스 오블리주#정보의 비대칭#도덕적 해이#케네스 애로#성선설#성악설#회계 조작

지성은 그리스인만 못하고, 체력은 게르만인보다 약하고, 기술은 에트루리아인에 뒤지고, 경제력은 카르타고인에 밀린 로마인…. 이런 민족이 로마제국을 건설하고 천년을 유지한 힘은 뭘까.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그 원천으로 꼽는다. 로마 지도층의 ‘도덕적 책무’가 로마제국 천년의 버팀목이었다는 얘기다. 왕과 귀족, 원로들이 평민보다 먼저 세금을 납부하고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이른바 가진 자의 도덕적 실천이 조그마한 도시를 천년제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진단대로라면 로마제국 몰락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쇠락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척점에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가 자리한다. 모럴 해저드는 단어 뜻 그대로 ‘도덕적 의무’의 반대적 개념, 즉 ‘도덕적 해이’를 의미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모럴 해저드는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정보가 부족한 계약자가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화재보험 가입자의 불조심 소홀로 보험사 손실이 커지고 다른 가입자의 보험료가 올라가는 것이 한 사례다. 주로 금융상품 계약자 간의 정보 불균형에서 유래한 모럴 해저드는 그 의미가 다양하게 확대됐다.

법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사익 추구, 스스로의 책임 회피, 지나친 집단이기주의, 명분만을 앞세운 무리한 정치 공약 역시 모습만 달리한 모럴 해저드다.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가 수시로 뉴스를 타지만 모럴 해저드는 ‘귀족’ ‘노예’를 가리지 않는다. 국가·사회의 건강지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모럴 해저드가 좌우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넘쳐나면 책임 배려 관용 양보 공존 등의 미덕으로 사회가 훈훈해지지만, 모럴 해저드가 기승을 부리면 거짓 편법 사기 부패 배신 등의 악성 바이러스가 사회를 어지럽힌다.

지도층의 훈훈한 미담보다 고위층 자녀들의 병역 기피, 논문 표절, 입시 부정, 기업의 회계 조작, 스포츠 승부 조작 등이 단골 뉴스 메뉴인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사회에선 모럴 해저드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보다 더 위세를 떨치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은 도덕적인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회복임을 함의한다. 모럴 해저드의 개념을 정립한 케네스 애로 교수는 맹자의 성선설에 기반한 ‘도덕’보다 순자의 성악설에 근거한 ‘시스템’에서 모럴 해저드의 해법을 찾는다. 법과 제도를 치밀하게 운영하고 도덕을 보조 수단으로 삼아야 양심적인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은행의 순서 번호표는 새치기라는 모럴 해저드를 막는 일종의 시스템인 셈이다. 제도가 우선인지, 도덕성 함양이 먼저인지는 견해가 분분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럴 해저드를 방치하기엔 그 수위가 너무 높아졌다. 4, 5면에서 우리 사회 모럴 해저드 실태와 원인, 해법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달콤한 '공짜 복지' ··· 藥일까 毒일까
커버스토리

달콤한 '공짜 복지' ··· 藥일까 毒일까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 등 '공짜 복지'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를 지지하는 측은 보편적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국·스웨덴·그리스 등 유럽 복지국가들은 과도한 사회복지로 인한 근로의욕 저하와 경제 침체를 겪었으며, 보편적 복지는 철학적 근거도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결국 정치인들의 '복지 포퓰리즘'이 실현 불가능한 무상복지 논의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2011.01.19

납치범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선택은?
커버스토리

납치범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선택은?

납치범에게 몸값을 지불하면 범죄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과 같아 더 많은 납치를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인질 희생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불법행위와 타협하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해군특수전요원 작전을 통해 인질을 구출했으며, 이는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응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2011.01.26

저축은행, 왜 한꺼번에 돈이 빠져나가지?
커버스토리

저축은행, 왜 한꺼번에 돈이 빠져나가지?

부산 지역 저축은행들의 연쇄 영업정지로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돈을 찾으려는 '뱅크 런' 현상이 발생했다. 은행들은 예금의 일부만 보관하고 나머지를 장기 대출하기 때문에 대규모 인출 요청에 대응할 수 없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며, 이는 금융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는 예금보험제도를 통해 1인당 5000만원까지 예금을 보장함으로써 뱅크 런을 억제하고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2011.02.23

예금보험제도,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의 문제 없나
커버스토리

예금보험제도,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의 문제 없나

예금보험제도는 금융회사 부실로 인한 뱅크런과 금융시스템 붕괴를 방지하는 필수 장치이지만,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이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는 문제가 있다. 예금보장이라는 안전장치에 의존한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PF 등 고위험 투자를 무분별하게 추진했고, 현행 제도가 사후 처리에만 집중해 부실 예방 기능이 약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2011.02.23

속담으로 배우는 경제학
커버스토리

속담으로 배우는 경제학

속담은 선조들의 경제 지혜가 담긴 생활 속의 진리로, 무한한 욕구와 유한한 재화의 불일치, 경제활동의 동기 유발, 기회비용과 매몰비용, 합리적 소비, 근로의욕과 도덕적 해이, 신용과 인적자본, 투입·산출의 원칙 등 경제학의 핵심 개념들을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속담들을 통해 경제원리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삶을 위한 실질적인 지혜를 전해왔다.

2007.03.07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