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공리주의만으론 살 수 없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는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등의 작품을 통해 19세기 가난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면서 다양한 계층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그는 산업사회의 여러 부작용이 이를 조장하고 합리화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즉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어려운 시절(Hard Times)'에서 당대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던 공리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가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제를 내건 공리주의는 개인의 행복을 최대로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적 효용성을 최고 가치로 내세웠다. 행복의 척도를 산술적으로 측정 가능한 물질적 효용성에 두었기 때문에 개인의 감정과 상상력의 가치는 무시되었다. 인간은 사회 시스템의 부품으로 취급되었으며 생산수단의 일부로 전락했다. 인간적 가치는 부정되고 다만 '사실(fact)'에 기초한 설명과 이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디킨스는 공리주의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소재로 '교육'을 선택했다. 교육은 공리주의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 개조의 원동력으로,공리주의자들은 산업체계가 강조하는 규율과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 노동자와 빈민의 자식들에게도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킨스는 '어려운 시절'을 통해 인간을 감정과 상상력,지성을 가진 복합체가 아닌 경제적 단위,통계적 수치로만 생각하는 현실을 비판하고,반공리주의적 가치와 인간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원문읽기 그것은 붉은 벽돌의 도시,만약 공장 연기와 재가 허락했다면 붉은색이었을 벽돌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그러나 사실은 야만인의 물감 칠한 얼굴처럼 부자연스러운 붉음과 검정의 도시였다. 그것은 기계와 높은 굴뚝의 도시였는데,그 높다란 굴뚝으로부터 연기의 뱀이 끊임없이 영원히 영원히 기어나와서 결코 풀어지지 않았다. 도시 안에는 검은 운하가 하나 있고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염료 때문에 자줏빛으로 흐르는 강이 하나 있었다. 창으로 꽉 찬 거대한 건물더미가 있는데 거기서는 하루 종일 덜컹거리고 덜덜 떠는 소리가 들렸고,우울한 광증에 사로잡힌 코끼리의 머리 같은 증기기관의 피스톤이 단조롭게 상하운동을 했다.
서로 똑같이 닮은 큰 길이 몇 개 있었고 한층 더 닮은 작은 거리가 많이 있었다. 그 거리에는 마찬가지로 꼭 닮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포도에서 같은 소리를 내며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출퇴근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매일은 어제나 내일과 꼭 같았고 매해는 작년이나 내년과 꼭 같았다. 코크타운의 이런 속성은 그 도시를 지탱하는 노동과 대체적으로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중략) 코크타운에서는 심하게 일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다.
▶해설=이 소설의 배경인 코크타운은 런던 같은 전통적 도시가 아니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새로 부상한 북부 산업도시를 대표한다. 도시 전체의 파괴적이고 기계적인 이미지를 공장과 기계,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일상과 연결지어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한 단면을 강렬한 이미지로 제시한다.
◆원문읽기
"자,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이오. 이 학생들에게 사실만을 가르치시오. 살아가는 데는 사실만이 필요한 거요. 사실 외에는 어떤 것도 심지 말고 사실 이외의 모든 것을 뽑아버리시오. 사실에 기초할 때만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을 만들 수 있는 거요. 학생들에겐 사실 이외의 어떤 것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하오. 이것이 내가 내 자식들을 키우는 원칙이고,이것이 내가 이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원칙이오. 사실만을 고수하시오,선생!" (중략) "상상이란 단어를 완전히 버리도록. 상상과 자네(씨시)는 아무 관계도 없으니까." (☞2003학년도 고려대 수시2에서 영어 지문으로 제시되었음)
▶해설=디킨스는 이 소설 전체에 걸쳐 산업사회에서 '사실' 중심의 공리주의 교육이 갖는 폐해를 그리고 있다. 이 교육의 요체는 '궁금해 하지 말라'이고 모든 일을 산술적 계산에 의해 해결하는 것이다. 디킨스는 자유로운 상상과 인간적 호기심을 가진 씨시를 강경하고 완고한 태도로 나무라면서 사실만을 강조하는 학교 이사장 그래드그라인드를 통해 역설적으로 사실(fact)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미와 상상(fancy)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