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이기적이거나 공익적이거나
독일의 역사학자 리하르트 반 뒬멘의 '개인의 발견-어떻게 개인을 찾아가는가 1500~1800'은 개인의 자기발견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개인에 대한 인식은 르네상스시기부터가 아니라 중세의 기독교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으며,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인 의미의 보편적이고 자유로운 '근대적 개인'은 18세기 이후에야 나타났다고 한다.
뒬멘은 개인 중심의 사고와 행동의 발달이 가정,학교,교회,국가와 같은 사회 문화적인 맥락의 변화 속에서 역사적으로 서서히 형성됐다는 것을 풍부한 사례를 들어 제시한다. 자화상,자서전,일기,개인적 서신,교양소설,해부학,골상학,인류학,심리학,가톨릭의 고백성사,학교와 가정의 양육제도,형벌과 법정 제도 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개인의 발견'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전통주의적 행동에서 개인주의적 행동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시대의 변화 속에 놓인 구체적인 개인의 삶과 행동에서 발견하고 있는 점에서 현대 역사학의 새로운 흐름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원문 읽기 비록 르네상스 시기가 자기성찰이라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던 시기라 해도,그렇다고 중세에는 자아발견을 위한 노력이 없었다거나 혹은 전반적인 보편주의 가운데 자아가 푹 파묻혀 있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르네상스의 개인이 19세기가 구성해 낸 것처럼 '시민적(burgerlich)' 개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계몽적 사고,시민적 사고라는 특징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근대적 개인은 18세기 말 이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해설=개인의 발견이 르네상스시기부터라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와 빌헴름 딜타이의 생각은 오늘날까지 별다른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가 대부분 사람들의 삶의 원리로 작용했던 중세시대에도 개인에 대한 인식과 관념은 싹이 트고 있었다. 교회는 성이나 계급에 따른 구별 없이 여자와 노예까지도 세례를 받게 함으로써 모든 개개인을 신의 피조물로 인정했다. 원칙적으로 교회는 각 개인의 가족 관계와 계급 관계를 벗어나 모든 개개인에게 동등하게 다가갔다. 이러한 개인이라는 의식과 개인의 자기발견에 대한 의식은 르네상스시기를 거쳐 18세기까지의 사회 발전과 정치경제적 상황 속에서 점진적으로 '근대적' 개인에 대한 의식으로 변화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교육하며 스스로 결정하는 근대적 개인이라는 의식은 계몽주의에 의해 19세기에야 비로소 확립된다.
◆원문 읽기 극단적으로 종교적이었던,즉 신에게만 매달렸던 종교개혁 시기에도 개인에게 집중했었지만 이와 달리,르네상스시기에 존재했던 인간과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은 분명 세속적인 특징이 두드러졌다. 종교개혁자들이 자신들의 세속적인 관심을 열어두었던 것처럼 르네상스에도 종교적인 차원이 내포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세속적인 고백이 이루어졌고 이는 특히 전기에 대한 관심이나 인간과 그의 육체,성격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특히 초상화가 부각됐던 미술에서 두드러졌다. 이 모든 관심분야에서 학문적이나 학자적인 성찰은 직접 관찰과 경험에 점차 밀려나게 됐다.
▶해설=종교개혁은 전 유럽에 걸쳐서 교황의 오랜 역사적 권위를 거부하게 만들었다. 개인의 구원은 더 이상 성직자 같은 중간 매개자 없이 신과 '직접' 관계를 맺게 됐다. 모든 개인은 신 앞에서 양심에 따라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새로운 기독교인들은 전통의 틀에 얽매여 생각하거나 살지 않았으며 자신의 확신과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르네상스시기의 인문주의자들과 학자들은 교회의 지배적인 권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의 길을 걸어가려는 욕구와 자기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욕구는 자기 성찰의 결과인 자서전과 개인 감정을 이야기하는 사적인 편지로 표현됐다. 16세기에 널리 유행한 초상화 예술을 통해 군주와 귀족,시민과 상인,학자들은 자신을 개성이 있는 영원불멸의 존재로 만들려고 했다. 개인을 주제화하는 이런 성향은 당시의 변화하는 사회 문화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고 발전했다.
◆원문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