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 열명 낸 집보다 처사 한명 낸 집이 더 낫다
'처사(處士)'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요즘 일상생활에서는 '처사'란 말을 거의 쓰지 않지만 아직도 절에서는 남자 신도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정승 열을 낸 집보다 처사(處士) 한 명을 낸 집이 더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처사'가 무엇이기에 막강한 권력을 상징했던 '정승' 열 명보다도 낫다고 한 것일까?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인 대표적 산림처사(山林處士),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 조식 선생은 살아서도, 그리고 죽어서도 자신을 다만 '처사'라고 불러달라고 했다고 한다.
천왕봉이 보이는 지리산 자락에서 평생을 은거하며 늘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옷에 달고 때로는 과격하고 직선적인 언어로 중앙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던 남명 조식의 글을 따라가며 진정한 '처사'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1.몸과 마음에 새기다
◆ 원문 읽기
좌우명(座右銘):언행(言行)을 신의(信義)있게 하고 삼가며, 사악(邪惡)함을 막고 정성(精誠)을 보존하라. 산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으면, 움 돋는 봄날처럼 빛나고 빛나리라.
패검명(佩劍銘):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敬)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義)다.
혁대명(革帶銘):혀는 새는 것이요, 가죽은 묶는 것이니 살아 있는 용을 묶어서 깊은 곳에 감추어두라.
▶해설=남명 조식 선생이 살았던 16세기 조선의 정치현실은 매우 암담했다.
1519년의 기묘사화와 1545년의 을사사화를 겪으며 자신의 숙부 조언경과 많은 동료 선비들의 참혹한 희생을 지켜본 남명의 마음은 어땠을까? 만일 우리들이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남명은 중앙 정치무대를 떠나 산자락에 숨어 살며 제자들을 교육하는 길을 선택했다.
어려운 현실과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았다는 비판을 할 수 있겠지만 남명은 '세상에서 쓰이거나 숨거나 대개 자신이 결정할 일'이라고 시(詩)를 썼다.
다만 '학자도 죽음으로써 도(道)를 지킬 뜻이 없으면 그 마음을 옳게 보존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우고 실천할 정도였다.
학자의 용기란 남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이기기 위함이니 이는 쉬운 것 같지만 실로 어려운 길이어서 죽을 힘을 다해 선생은 그 길을 걸어갔다.
그래서 늘 공부하는 자리 옆에,자신이 차고 있는 칼에, 그리고 혁대에 목숨을 다하여 자신이 걸어갈 길에 대한 내용을 새겼던 것이다.
2.'경(敬)'으로 들어가라, '의(義)'로 나와라
◆ 원문 읽기
이른바 선(善)을 밝힌다는 것은 이치를 궁구(窮究)함을 이름이요, 몸을 정성되게 한다는 것은 몸을 닦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