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지식의 필요성
337호에 나온 <기본 유형의 변형문제유형>의 해설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제의 경우 단순히 제시문만 가지고 풀이를 해도 무리가 없지만, 배경지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한결 더 쉽게 풀 수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답을 예단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물론 역사를 공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최근의 세대에게 중국사나 한국중세-근대사를 소재로 한 문제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를 풀면서 몇몇 사실들만 잘 알아둬도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습니다. 가령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문제에 정말 자주 나오는 학자이지요. 대표적인 실학자라서 그런지 18세기 사람치고 매우 근대적인 혹은 합리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분이거든요.
사마천은 중국 한나라 시절의 역사가입니다. 중국 최초의 제국이었던 진(秦)나라가 기원전 206년 3대 16년 만으로 끝나고 들어선 역사상 최강의 제국 한(漢)나라는 유교를 정식으로 국교화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진나라가 백성들을 엄격하게 들볶아댄 통에 민심이 따라주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기원전 141년에서 87년까지 무려 54년이나 통치한 한무제는 재상인 동중서(董仲舒)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를 국교화했고, 이 시기와 맞물려 사마천 역시 필생의 역작 사기(史記)를 완성하게 됩니다. 당연히 이 사기는 그러한 분위기와 크게 어긋나지 않게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가지게 됩니다. 아하, 그렇다면 대략적으로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기 위해 백이와 숙제의 고사를 활용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학의 융성은, 두 차례 이어진 난리(임진·병자)로 인해 흐트러진 사회기강을 바로 잡고자 극도의 명분 중심의 성리학적 질서가 지배하던 조선 후기에 이루어졌습니다. 명분만을 강조하다보니 사회개혁이나 제대로 된 국가 운영 자체가 되기 힘들던 그 시절, 주로 재야에 있던 학자들을 중심으로 실학이라 불리우게 되는 실용적 측면의 개혁책을 내놓게 되는 것입니다. 아하, 그렇다면, 이 제시문이야말로 성리학(유교)과 실학의 대결이 아닌가?! 배경지식은 이렇게 문제를 풀어줍니다.
▨ 문제 풀이 제시문 (가)를 참고하라고 주문했지만, 사실상 이 문제는 (가)의 의도를 따라서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가 (가)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를 물어볼 뿐입니다. 같은 방향의 제시문(=설명)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 문제와 유사해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비판하라는 요구는 없으니 의도를 서술(설명)하면 됩니다.
제시문 (가)는 <백이와 숙제는 어떻게 충절의 대명사가 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싣고 있는 글입니다. 보다시피 사마천이 그렇게 기록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백이와 숙제를 그렇게 기억하게 되었지요. (이른자 경전화/절대화) 하필 고사리를 먹다 굶어 죽었다는 비장함으로 인해 실리를 배격한 명분론의 상징으로 이들은 충절의 유교 이념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숭앙의 대상이 됩니다.
(가)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마천이 이를 선택하면서 이들이 활용됐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절대적으로 숭상됐다는 점이지요. 하지만 박지원과 같은 실학자는 이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나)는 고사리가 먹고 체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제철도 아닌 봄나물인 고사리를 구해다가 음식을 하다니, 신기할 따름이었을 터, 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을 하는 사람은 관례처럼 되어버린 고사리 음식이 결국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사리가 충절의 상징이면 상징이지, 자연의 이치까지 거스르며 강제돼야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미 죽은 백이숙제가 살아있는 건량관을 죽인다고 할까요?
뒤이어 태휘라는 말몰이꾼의 말장난(?)이 나옵니다. (가)에 말했듯, 유교적 충절의 상징인 백이숙제로 인해 생겨난 에피소드이니, 이를 익살스럽게 풀어보려는 행위인 것이지요. 박지원은 이를 뻔히 알고도 그냥 실은 것으로 보아, 백이숙제로 대표되는 경직된 숭배 문화나 성리학적 질서에 대해 비꼬고 싶었던 것이지요. 실로 별 것도 아닌 고사리 예화가 훗날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억압하고 있으니, 유교적 질서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