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의 질서와 번영을 이끄는 원리는 무엇인가? 애덤 스미스(1723~1790)가 남긴 불후의 고전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이 같은 의문에서 쓰인 것이다. 그가 찾은 해답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스미스의 ‘보이지 않은 손(invisible hand)’을 떠 올릴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며, 모든 인간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보이지 않은 손’과 같은 이치의 신이 있어서 인간사회의 질서와 번영은 저절로 달성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스미스가 인간의 이기심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했다고 알고 있다. 나아가 많은 사람들은 스미스가 약육강식의 시장경제를 옹호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같은 스미스 이해와 비판은 한마디로 말해 지독한 오해와 편견에 불과하다.
보통 사람이 스미스의 두 책을 직접 읽고 이해하기는 힘들다. 마음을 내어 억지로 한 번 읽을 수는 있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을 쓴 것은 1759년이다. ‘국부론’은 1776년이다. 이후 1790년 죽기까지 스미스는 두 책을 각각 5차례나 고쳤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 전문가
일본 오사카대학 경제학과의 도메 다쿠오(堂目卓生) 교수가 그의 세미나에서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이다. 이후 5년간 그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스미스의 두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나아가 도메는 그가 이해한 스미스의 생각을 뇌과학자, 사회심리학자, 행동경제학자들에게 소개하였으며, 그들과 함께 스미스를 토론하였다. 도메는 18세기 스미스의 생각이 21세기 오늘날에도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가짐에 경탄하였다. 그렇게 스미스에 몰입한 5년간의 성과가 2008년 『アダムスミス -‘道德感情論’と ‘國富論’の世界-』(中央公論新社)라는 문고본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으로 도메는 2008년도 산토리학예상(정치·경제부문)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그것을 2010년 우경봉이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다. 단언컨대 이 책은 스미스의 철학과 경제학의 정수를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요약하고 소개한 세계 최고 수준의 책이다.
운명론적 세계관의 한계
“인간사회의 질서와 번영을 이끄는 원리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특정 시대가 되어서야 제기될 수 있는 역사적인 물음이었다. 중세인들은 그러한 의문을 갖지 않았다. 유럽의 중세는 종교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인간사회의 질서는 우주만물을 창조한 신의 섭리의 일환이었다. 사회의 질서는 신의 대리인인 교회와 그의 법에 의해 규율되었다. 사회가 번영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사회와 자연은 신의 섭리 가운데 일체로 인식되었다. 사회는 타락한 인간들이 잠시 머무는 곳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자연관과 사회관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0세기 이후 동아시아를 지배한 도덕철학은 성리학이다. 성리학의 세계에서 자연과 사회의 삼라만상은 어떤 근본적인 도덕원리에 의해 창조되었다. 삼라만상의 본성에는 그 근본적 도덕원리가 각기 그에 상응하는 분수로 깃들어 있다. 그래서 인간사회는 그 조화가 저절로 달성되는 자기충족적인 질서이다. 예컨대 인간은 부모에 효도하고, 임금에 충성하고, 어른에 공경하고, 남편에 순종하고, 친구와 신의를 지키는 본성을 지닌다. 주자는 이를 가리켜 5륜이라 하였다. 15~19세기 조선왕조는 노비와 주인 사이에 타넘을 수 없는 분수가 있다는 또 하나의 윤리를 만들어 냈다. 조선왕조는 5륜이 아니라 6륜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 6륜에 충실하면 사회는 저절로 조화를 이루며, 나아가 자연도 감읍하여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내 안의 공평한 관찰자
이러한 중세적 도덕철학이 서유럽에서는 16~17세기의 과학혁명을 맞아 해체되었다. 자연과 사회를 통할한 신의 세계는 부정되었다. 자연의 법칙과 구분되는 사회 질서의 원리는 무엇인가? 이렇게 제기된 새로운 물음에 대해 서유럽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모색한 해답은 다양하였다. 상당수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에 질서를 향하는 어떤 도덕원리가 있다고 간주하였다. 인간은 여전히 신의 피조물이었다.
물론 그 신은 중세의 신과 달리 훨씬 이치로 순화된 존재로 바뀌어 있었다(理神論). 예컨대 로크는 “인간은 신을 닮은 신의 피조물로서 자유를 본성으로 한다”고 하였다. 그 인간들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사회계약을 체결하여 국가와 법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로크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과 사회의 이해는 엄밀히 말해 종교적 선언이지 과학적 분석은 아니다. 종교적 선언이긴 하지만, 그것이 인간사회를 진보로 이끄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유용한 것으로 지지하고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