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한국 관세청은 미국산 수입 완성차에 대한 대규모 원산지 검증 조사에 나섰다.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따라 미국에서 조립된 자동차라도 내부 구성품이 일정 비율 이상 미국산이 아니면 관세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통상 자동차 원가의 절반 이상(55%)이 미국산이어야 관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본 자동차 회사의 차량이 엔화 강세를 피해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자 우리나라 관세청이 원산지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이러한 원산지 증명은 한국 상품도 예외가 아니다. FTA 체결국 세관에서 우리나라 제품의 원산지 확인서를 살펴보고, 규정에 어긋났다고 판단되면 세관에 검증을 요청하거나 직접 해당 업체를 조사하게 된다. 그 결과 원산지가 아니라는 판명이 나면 기업은 그동안 감면받았던 세금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 문제는 원산지 증명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다는 점에 있다. 또한 FTA 체결국마다 원산지 규정이 달라 해당 국가에 맞는 원산지 증명은 매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가 2004년 칠레를 시작으로 전 세계 47개국이라는 점은 한편에서는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할 수 있다.
원산지 증명 못하면 관세혜택 못 받아
대기업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필요한 경우 전담 조직이나 부서를 두고 전문가를 활용해 FTA 체결국으로 수출 시 원산지를 증명하면 된다. 문제는 한국의 중소·중견기업이다. 1979년 이래 34년 만에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의 첫 주제가 ‘중소·중견기업들의 수출 지원 대책 마련’으로 선정될 만큼 이들은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주체지만, 원산지 증명 절차의 복잡함 때문에 FTA 체결로 인한 관세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 많은 수의 중소기업이 원산지가 증명될 경우 그 혜택이 얼마나 큰지 알면서도 이를 감당할 조직과 비용이 없어 FTA의 관세혜택을 포기하고 있다. 2014년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제시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이 FTA 특혜관세를 잘못 적용해 세관으로부터 추징당한 세금은 2011년 8월부터 올해까지 무려 1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1년 160억원이던 추징액이 본격적으로 FTA가 시행된 2012년 이후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추징 사유 중 가장 많은 게 ‘원산지 결정기준 위반’이라고 하니, 중소기업들이 FTA의 혜택을 알면서도 포기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는 ‘원산지 관리사’들이 있다. 원산지 증명서류를 발급하는 일은 까다롭고 복잡해 전문 인력이 없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자체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원산지 관리사들은 원산지 증명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해당 업무를 도맡아 수행함으로써 FTA 체결의 혜택이 중소기업에도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국내산 중간재 활용 높이기도…
원산지 관리사 업무의 중심에 놓인 것은 바로 원산지 규정(Rules of Origin)이다. 이는 원산지 관리사의 업무일 뿐만 아니라 FTA를 비롯한 경제통합의 핵심 요인이다.
품목별, 국가별로 기준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FTA와 같은 무역특혜협약을 체결한 경우에만 무역장벽을 완화하고 협약국이 아닌 국가에 대해서는 기존의 무역장벽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원산지 규정은 특혜에 대한 제3국의 무임승차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최근 오렌지 농축액의 원산지 증명이 이슈로 부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FTA 체결 전 54%였던 관세율이 한·미 FTA 발효 직후 0%로 낮아졌는데, 미국 오렌지 수출업체 4곳에서 브라질산 원액을 섞어 한국으로 수출한다는 의혹이 제기돼 대규모 조사가 실시됐다. 브라질산 원액을 섞은 제품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관세혜택을 보게 된다면 한·미 FTA의 혜택이 비협약국인 브라질에 돌아가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원산지 규정은 중간재의 수요를 역내 생산자에게 집중시켜 무역협약 체결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높이는 역할도 수행한다.
즉, 무역협정 체결 전에는 생산 재료에 해당하는 중간재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외국산을 수입해 사용했으나 무역협정 체결과 원산지 규정으로 인해 국내산 중간재를 활용,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중간재 구입에서 이전보다 높은 비용이 수반되지만 관세 감면 혜택으로 인해 보다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