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차르트는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일찍 요절하였다. 그의 음악적 천재성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쉽게 잊지 않았다. 당시 빈에서는 모차르트의 죽음을 둘러싸고 다양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당시 황실 궁정 악장이었던 살리에리가 그를 질투하여 죽였다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하였다. 훗날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희곡과 오페라가 만들어졌을 정도이니, 당시의 소문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본 그의 죽음은 유효수요를 잘못 예측해 경제적으로 고통받았던 한 예술가의 비극적 최후로 규정할 수 있다. 유효수요란 시장에서 구매력이 뒷받침된 수요를 말한다. 유효수요이론은 케인스가 1930년대 대공황을 직접 경험하면서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시한 이론이다. 케인스 이전의 고전학파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을 주장하였다. 고전학파들은 물건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동력, 자본 등을 제공한 사람들에게 대가가 지불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결국 이들이 자신의 소득을 물건을 사는 데 지출할 것이기 때문에 공급만 하면 수요는 저절로 창조된다고 보았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이에 대해 케인스는 구매력을 수반하지 않는 욕망은 단지 잠재적 수요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을 갖고 물건을 구매하려는 유효수요(effective demand)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장기적으로는 인구 증가와 같은 공급 측면이 경제 활동의 수준을 결정하는 데 중요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유효수요의 크기에 따라 사회의 경제활동 수준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당시는 근대사회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시대였다. 근대사회란 봉건제사회 이후 전개된 사회적 흐름으로 종교적 권위에서 벗어나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싹트기 시작한 시기였다.
여행을 즐겼던 모차르트는 유럽 전역에서 전파되고 있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그의 인생의 많은 부분을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유럽 대륙 전역에서 불고 있는 자유의 흐름이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확인하였으며, 그 중심에 프리메이슨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당시 빈의 상류층 역시 프리메이슨 단원이 많았으며, 모차르트 역시 1784년 12월 프리메이슨에 가입했다. 모차르트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 결사 단체를 알지 못하면 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근대적 정신에 매료되어 있었다.
근대적인 정신에 깊이 감흥받은 모차르트의 음악은 더 이상 궁궐에서 연주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내용과 형식으로 바뀌었다. 그는 고루하고, 구태의연한 귀족 사회를 위해 작곡하고 연주하기보다는 근대적 정신과 함께 부상하고 있는 신흥 중산층을 위해 작곡하기 시작한다. 이들 프리메이슨은 당시 다양한 사업 활동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였기 때문에 귀족을 대신하여 자신의 음악을 기꺼이 소비해 줄 수요자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미 영국에서는 귀족의 지원 없이 스스로 극장을 인수하여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전개했던 헨델의 사례도 유럽 각지의 여행을 즐겼던 모차르트에게는 좋은 귀감이 되었을 것이다.
중산층을 위한 음악 활동 당시 모차르트가 전개한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모차르트는 귀족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전개하려고 시도했던 다양한 모습들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빈에서 신흥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작곡, 연주, 교습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신흥 중산층을 타깃으로 한 실험적인 곡들을 작곡하기에 이른다. 잘츠부르크의 궁정음악가로 활동하거나, 황실 궁정악단 작곡가로 임명받는 등 비교적 귀족 사회와 가깝게 지낸 적도 있어 귀족 계층이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모차르트였지만, 그는 귀족 계층을 풍자한 ‘피가로의 결혼’(1786)과 조화롭고 자유로운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마술 피리’(1791)를 연이어 발표한다.
하지만 당시 음악을 제외하고 문학 미술 등 다른 예술 분야에서는 근대적 모습을 한껏 목격할 수 있었지만, 음악 분야에 대해서는 유효수요가 부족했다. 그것은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미술작품과 문학 작품을 즐기는 데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음악을 즐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휠씬 크기 때문이다. 근대적인 정신을 담아낸 그림을 위한 미술 시장은 소규모의 그림을 위주로 형성되고 있었으며, 근대문학 시장 역시 책 한 권 정도 구매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