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합리적인 이상 사회는 없다 우리는 가끔씩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상품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는 흑자를 기록하고 더불어 국민 소득도 증대한다는데,그렇다면 그 흑자와 증가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벌어들인 돈이나 재화가 있다면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개인에게 체감이 되어야 할 텐데 왜 사는 게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사람만 자꾸 늘어나는 것일까?
예컨대 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수입이 늘면 자연히 그 결과로서 살림살이도 좀 나아지고 밥상에 고기반찬도 자주 올라오고 자식들 용돈도 더 챙겨주고,그럼으로써 가족의 화목이 점층적으로 도모되고,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국제적으로 국격이 높아지고 세계 몇 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보도를 지겹도록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의 콩고물은 전혀 우리에게 떨어지지 않으니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다.
이렇게 무언가 불공정하고 억울하고 불편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졌다는 느낌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지금 여기에 없지만 있기만 하다면 당장에 그곳으로 이민이라도 가고 싶은 이상향을 꿈꿔 보게 마련인데,500여년 전의 토머스 모어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토피아인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눠 그 중 여섯 시간만을 일할 시간으로 배정하고 있습니다.
정오까지 세 시간 일하고,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점심 후에 두 시간 쉬고 나서,다시 세 시간 일합니다.
그러고 나서 저녁을 먹고,저녁 여덟시께에 잠자리를 들어 여덟 시간 동안 잠을 잡니다.
일하는 시간,잠자는 시간,밥 먹는 시간 이외의 낮 시간은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자유시간을 술 마시고 떠들거나 빈둥빈둥 노는 데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자기가 선택한 어떤 일을 하는 데 제대로 쓴다면 말입니다.
보통 이런 빈 시간은 지적 활동에 이용됩니다. 그곳에서는 매일 아침 일찍 공개 강의를 하는 것이 정착된 관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강의에는 학문에 전념하도록 특별히 선발된 사람들은 반드시 출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만,그 밖의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남녀를 막론하고 아주 많이 강의를 들으러 모여듭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이 강의 또는 저 강의를 들으러 갑니다.
그러나 지적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는 많은 사람들처럼,이런 나머지 시간을 차라리 자기가 종사하는 일에 더 사용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실은 이런 사람들은 나라에 아주 유익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칭찬을 받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한 시간 동안을 오락으로 보냅니다. 여름은 정원에서,겨울은 식사를 하는 공회당에서 즐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