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Society and Its Enemies / 칼 R.포퍼(Karl popper)
다음 제시문의 요지(要旨)를 200자 이내로 쓰고,글쓴 이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목을 붙여 2800자 정도(띄어쓰기 포함 ±200자 허용)로 논술하시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일시하고 이타주의를 집단주의와 동일시하는데,이것은 낭만주의적 관념의 영향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인간이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중요성을 어떻게 잘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주요한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 방해가 된다.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을 넘어선 어떤 것,우리가 헌신할 수 있는 어떤 것,우리가 그것을 위해 희생해도 될 어떤 목적을 지향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와 같은 어떤 것은 바로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임해야 할 집단적인 것임에 틀림없다고 결론 내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희생하라는 말을 듣게 되며,동시에 그렇게 하면 훌륭한 거래를 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희생을 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 명예와 명성을 얻게 된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우리는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영웅,곧 역사의 '주역(主役)'이 될 것이요 작은 위험을 무릅쓴 대가로 큰 보상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극소수 사람들만의 가치가 인정되고 평범한 사람들은 버림받는 시대의 미심쩍은 도덕률이요,역사 교과서에 한 자리 차지할 기회를 가진 정치적 귀족이나 지적 귀족들의 도덕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도저히 정의와 평등주의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도덕률일 수 없다.
역사적 명성이란 정의로운 것일 수 없는 것이요,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못지않게 존귀한 무수한 사람들은 언제나 잊혀지게 될 것이다.
한층 고차적인 보상은 후대만이 줄 수 있다는 윤리적 교설이 눈앞의 보상을 찾으라고 가르치는 교설보다 아마 어떤 면에서 조금 우월하리라는 것은 인정해야 마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교설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성공과 보상을 거부하는 윤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윤리는 굳이 창안해 낼 필요도 없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이미 기독교가 가르쳤던 것이다.
적어도 초창기 기독교는 그러했다.
그것은 다시 우리 시대에 와서 산업에서의 협업뿐만 아니라 학문 활동에서의 협업이 가르치는 바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낭만적인 역사주의적 명성의 도덕률은 이제 쇠퇴의 길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무명 용사가 그것을 보여준다.
희생은 익명으로 이루어졌을 때 더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