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의 역사‥연금술서 닷컴까지, 튤립에서 주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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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의 역사‥연금술서 닷컴까지, 튤립에서 주식까지

오형규 기자2007.05.16읽기 5원문 보기
#투기#버블(거품)#닷컴 열풍#튤립 투기#미시시피 투기#남해 투기#대공황#연방준비제도(FRB)

욕망이 빚어낸 악의 꽃문명 발전시키는 촉매 되기도

인류 역사에서 시장이 등장하면서 투기도 생겨났다. 어쩌면 투기가 없는 시장은 따분해서 생기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행동은 합리성과 거리가 멀 때가 더 많다. 이기심을 넘어선 탐욕과 집단 착각에 빠지는 미몽(헛된 꿈)이 합쳐질 때 투기는 활짝 꽃을 피운다. 중세의 연금술에서부터 현대의 닷컴열풍까지, 투기는 곧바로 버블(거품)을 낳았다. 거품이 터진 후에야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다시 투기를 한다.

투기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역사상 세 차례의 골드러시레드 제플린의 불후의 명곡 'Stairway to Heaven'은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There's a lady who's sure all that glitters is gold. (반짝이는 것은 모두 금이라 믿는 여자가 있었다)" 이는 "All is not gold that glitters(빛나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란 속담을 패러디한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빛나는 것을 모두 금이라고 여겼던 시절이 세 차례 있다. 첫 번째가 중세의 연금술 시대. 돌이나 값싼 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미몽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17세기 원소 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진 아무도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 비금속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재료)을 부정할 과학 지식이 없었다. 두 번째는 19세기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gold rush)였다.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돼 너도나도 금을 캐러 달려갔다. 성공 확률은 1%에도 훨씬 못 미쳤고, 무수한 좌절을 남겼다. 세 번째는 최근 몇 년 전 세계를 휩쓴 현대판 골드러시, 즉 닷컴 열풍이다. 회사명에 '닷컴(.com)'만 들어가면 너도나도 돈을 싸들고 가서 주식을 샀다. 기업이 적자 투성이여도, 사람들은 '미래수익'이라는 신기루에 취해 대박의 꿈을 꿨다. ◆튤립에서 주식까지

서구 근대 경제사에는 3대 투기 사건이 있다. 바로 튤립 투기, 미시시피 투기, 남해(South Sea) 투기이다. 역사상 최초의 투기 대상은 튤립 구근이었다. 1630년대 국제무역으로 황금기를 구가하던 네덜란드에선 튤립 희귀변종이 신분 상승의 상징이자 최고의 투자 대상이 되면서 가격이 폭등했다,튤립 한 뿌리가 집 몇 채 값을 호가했을 정도다. 1637년 튤립 투기 금지령이 내려지고서야 수그러들었다. 18세기 주식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투기의 풍선도 급팽창했다. 1720년 프랑스에선 미시시피 투기가 터졌다.

당시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 사업가 '존 로'가 미시시피 회사를 인수한 뒤, 엄청난 수익을 낼 것으로 선전하고 자기 은행인 방크 로얄르(Banque Royale)에서 찍은 지폐로 주식 살 돈을 대출해 주면서 주가가 30배나 폭등했다가 한순간 폭락했다. 그 파장이 워낙 커 프랑스 정부는 이후 150년간 주식회사 설립을 제한했고 중앙은행 외에는 은행(Banque)이란 이름을 못 붙이게 했을 정도다. 같은 해 영국에선 미시시피 회사의 수법을 모방한 사우스시 회사 주가가 폭등했다. 심지어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도 투자했다가 큰 낭패를 봤다.

뉴턴은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도저히 예측하지 못 하겠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20세기의 대표적 투기투기의 역사는 1920년대 미국으로 넘어온다. 1913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탄생하면서 불황은 사라질 것이란 경제적 낙관론이 퍼졌고, 1차 세계대전 특수로 1920년대 미국 증시는 투기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검은 목요일로 불린 1929년 10월24일 이유 없는 주가 급락 이후 미국 다우지수는 300에서 1932년 41로 폭락했다. 대공황이었다. 1980년대 일본에선 부동산 투기붐이 일어났다. 엔화 강세로 넘쳐나는 돈이 부동산과 증시로 몰려갔다.

부동산 불패 신화에 길들여진 일본인들은 나라 안팎의 부동산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하지만 일본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을 계기로 1991년 이후 10년간 집값은 60%,상업용지는 80%나 폭락했다. ◆예상치 못한 긍정적 효과투기는 필연적으로 버블(bubble)을 수반하고 버블의 종착역은 파멸과 붕괴(bust)이다. 하지만 투기의 심각한 후유증 속에서도 아이러니한 긍정적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골드러시는 금을 캔 경제효과보다 그 과정에서 도로와 도시가 생겨나고 마차, 연장 등 관련 산업과 음식·숙박업 등 서비스업이 활성화되면서 경제가 부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는 변종, 희귀종 등의 재배 기술을 화훼산업에 적용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결국 투기적 수요에 의해 기술개발이 촉진돼 네덜란드는 이후 400년간 화훼산업의 종주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1990년대 미국의 벤처 투기도 무수한 사기 피해자를 낳았지만, 지금은 옥석이 가려지면서 IT(정보기술) 경쟁력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냈다. 따라서 투기는 그 자체로는 극히 부정적이지만 나름대로 '치어리더' 역할도 없지는 않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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