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사 굴욕' 겪은 황제의 복수…교황권력 '추락'
남정욱의 종횡무진 경제사

'카노사 굴욕' 겪은 황제의 복수…교황권력 '추락'

생글생글2024.12.12읽기 6원문 보기
#카노사 사태#종교개혁#루터#십자군전쟁#30년전쟁#베스트팔렌조약#소련 해체#시장경제

(61) 교황의 '흥망성쇠'

교황, 세속 권력 손에 쥐면서 타락

십자군전쟁 실패로 교황 권위 떨어져

루터 종교개혁 이후 권력 '내리막길'

종교·영토 싸움 '30년전쟁' 직후 힘 잃어

참전국 베스트팔렌조약 땐 자리 없기도

현재 교황은 '영적 지도자'로 원상 복귀

바티칸의 성베드로대성당. 교황청의 주요 수입원은 크게 네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매년 수백만 명이 방문하는 바티칸 박물관의 수익이다. 1991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소련이라는 제국이 해체된다. 70년 넘게 각종 실패를 거듭하며 국민을 괴롭힌 공산주의라는 실험이 막을 내린 것이다. 이를 주도한 게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보리스 옐친이다. 전자는 개혁파로, 후자는 급진 개혁파로 불리지만 둘의 차이를 ‘급진’이라는 수사만으로 설명하면 곤란하다. 개혁파는 개혁을 전진시키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해야 사회주의를 ‘구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급진개혁파는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하루라도 빨리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서야 소련이 산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이념을 살리려는 세력과 나라를 살리려는 세력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를 종교개혁의 선봉장이라고 칭하거나 그가 로마 가톨릭에 95개 조의 반박문을 던진 날인 1517년 10월 31일을 개신교의 창립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애매하다. 그 시점에서 루터가 가톨릭과 완전히 등질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다만 사제제도의 남용과 면벌부에 대한 교회의 권한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소련 해체 당시에 비 유해 루터의 주장을 슬로건으로 바꾸면 ‘돌아가자, 초대 교회로’ 혹은 ‘고쳐 쓰자, 가톨릭’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루터는 가톨릭과 싸웠다기보다 반교황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교황청에 대들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가톨릭을 박차고 나가 아예 새살림을 차린 것은 스위스 제네바의 칼뱅이었다. 로마 교회의 정치적 수완교황 제도는 장구한 역사를 거치며 얼개가 짜인 시스템이자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제도다. 예수는 생전에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남은 열두 제자의 몫이었다(배교자 유다가 빠졌으니 11명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 자리는 마티아라는 인물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 12명이 한 일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낸 사람이 있으니 바로 사도 바울이다. 세계 최초의 교회도 바울이 기틀을 다졌다. 안티오키아 교회다. 당시 영향력 있고 지명도가 높은 교회가 5개였다.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폴리스 그리고 로마 교회다. 로마 교회는 베드로가 설교했고, 초대 순교자들이 나왔으며, 사도가 세운 서방 유일의 교회였다. 처음에는 존재감이 제일 떨어졌다.

그러나 로마라는 지역 특성상 대표성과 특유의 정치적 감각으로 로마 교회는 후에 다섯 교회의 수장이 된다. 가톨릭에서는 보통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다. 의외로 2대 교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탈리아 출신의 리노다. 그 역시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순교했다. ‘협상의 달인’ 교황 레오 1세초기 교황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 레오 1세다. 그는 452년 훈족의 왕인 아틸라를 만나 로마 침공을 포기하게 만든 사람이다. 이민족 군사 지도자들과 협상하는 데 재능이 있었는지 레오 1세는 455년에도 아프리카에서 온 겐세리크와 협상해 또 로마를 지켰다.

레오 1세의 후임자 중 눈에 띄는 인물이 5세기 말의 젤라시오 1세다. 그는 황제에게 신권과 왕권은 구분되며, 사제는 세속 권력을 준수하고 황제는 교황의 권위를 기꺼이 승인해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어느새 그리스도교는 이렇게 커버렸다. 쫓겨 다니고 경기장에서 사자에게 잡아 먹혔던 게 엊그제 같은데 황제에게 “나도 당신과 같은 권력자다”라고 주장하고, 심지어 종교적인 일에서는 황제도 자신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교황과 세속 권력은 충돌했다. 그 대표적 사건이 11세기 중엽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 사이에서 벌어진 카노사 사태다.

30년전쟁으로 존재 가치가 사라진 교황추위 속에서 맨발로 떨며 치욕을 겪었지만, 최종 승자는 세속 권력의 하인리히였다. 황제가 여러 명의 교황을 폐하는 등 교황의 굴욕 시대가 이어졌으며, 11세기 중반 이후 교황 권력이 잠시 급상승했으나 십자군전쟁이 실패하며 다시 위세가 추락했다. 이어 루터의 1517년 이후 존재감이 현저히 떨어졌으며, 완전히 힘을 잃은 시기는 종교분쟁에서 시작해 영토 문제로 마무리된 30년전쟁 직후다. 가톨릭과 개신교 세력이 한판 붙어 독일 전 지역의 인구를 감소시키며 1648년에 끝난 전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참전국들이 모여 베스트팔렌조약을 맺을 때, 교황의 자리는 없었다.

현재 교황 제도는 크게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다. 영적 지도자에서 출발해 세속 권력을 손에 쥐며 타락했다가 다시 영적 지도자의 위치로 원상 복귀했다. 영화 ‘두 교황’이 재현한 바티칸의 이모저모2000년 동안 총 264명의 교황이 옹립되었다. 현재 266대 교황은 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출신인 프란치스코다(3선을 하신 분이 있어 숫자 불일치). 자진 사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2019년에 개봉한 ‘두 교황’인데, 세상의 기준과 타협하지 않고 전통을 지키는 것이 종교라는 보수 성향 교황과 교회가 소외된 사람들을 소외시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키고 있어 변혁이 필요하다는 진보 성향 교황의 품위 있는 논쟁은 비록 영화적 허구지만 언어의 향연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바티칸을 실제로 보는 것보다 더 실감 나게 구경할 수 있는 것도 영화의 또 다른 재미. 물론 사진 촬영까지 금지된 시스티나 성당 내부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한 것이지만 비록 모작이나마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클로즈업으로 감상하는 것은 분명 안구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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