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론 아닌 문학적 수사로 재정정책 설명 '눈길'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경제이론 아닌 문학적 수사로 재정정책 설명 '눈길'

김동욱 기자2022.12.08읽기 5원문 보기
#케인스#일반이론#유효수요#재정정책#대량실업#자유방임 경제학#정부 개입#뉴딜정책

(72) 금융위기 때마다 재조명되는 케인스 케인스(사진)의 유명한 <일반이론>은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재미없는 책이다. 책의 원제목 역시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으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장황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따분하고, 웬만해선 책꽂이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성격의 책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한순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드는 구절을 만날 수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유효수요’ 창출과 관련된 구절로, 신기하게도 케인스는 이 부분에선 화폐나 이자율 같은 각종 금융 관련 얘기나 수학공식이 아니라 마치 고대의 예언가가 된 듯 문학작품이 연상되는 표현을 구사하고 있다. 케인스의 표현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어불성설의 결론으로부터 빠져나오고자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낭비적인 형태보다도 오히려 완전히 낭비적인 개입 지출의 형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금광으로 알려진 땅 한가운데 구멍을 파는 형태는 그것이 세계의 실질적인 부에 대해선 아무것도 보탬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직 노동의 비효용을 가져올 뿐인데도 모든 해결책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이다. 만약 재무성이 낡은 몇 개의 케이스에 은행권을 채워서 그것을 폐광된 탄광에 적당한 깊이로 묻고, 그 다음에 탄광을 도시의 쓰레기로 지면까지 채워놓은 뒤 자유방임의 원리에 입각해 개인 기업이 다시 파내게 한다면 더 이상 실업이 존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그 반작용에 의해 사회의 실질소득이, 또 나아가선 그 자본적 부도 또한 현재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크게 될 것이다.

물론 가옥 또는 그와 비슷한 것을 건조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그런 방법을 택하는 데 있어 정치적 혹은 실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 땅을 파고 돈을 묻은 뒤 다시 파내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 고대 이집트는 피라미드의 건조와 귀금속에 대한 탐색이란 두 가지 활동을 행했다는 점에 있어서 이중으로 운이 좋았다. 이집트가 이룩한 신화적인 부도 의심의 여지 없이 피라미드 건조와 귀금속 탐닉이라는 활동 덕이었다. 이들 활동의 과실들은 소비를 통해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풍족하다고 해서 값어치가 떨어지지는 않는 것들이다. 중세에는 사원을 세우고, 만가(輓歌)를 노래했다.

두 개의 피라미드, 죽은 자를 위한 두 개의 미사곡은 하나에 비해 두 배의 효과가 있다. ”자연적으로 실업이 치유될 것이란 자유방임 경제학의 생각과 달리 케인스는 장기간 노동시장이 균형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봤다. 노동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만큼, 케인스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수요를 늘려 경기침체를 탈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같은 주장은 빼어난 문학적 수사의 힘을 빌렸다. 금융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재조명되는 경제학자가 바로 케인스일 것이다. 반면에 케인스식 경제정책의 효용에 대한 논란도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가 위기 때마다 정부 개입과 규제를 원없이 처방하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도 케인스의 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고, 시대를 변화시켰다. 케인스가 이론을 내놓고 활발히 활동하던 1920~1930년대는 기존의 경제학 ‘고전’과 과거의 경제규칙이 무용지물이 됐던 때다. 자유로운 기업과 안정된 통화, 개방경제는 순식간에 과거의 유물이 됐다. 케인스의 책이 세상을 바꾸는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복잡한 수식과 엄청나게 어려운 이론이라기보다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에 손쉽게 다가가는 문학적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케인스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뉴딜정책을 촉구한 것도 문학적 수사였다.

케인스는 1933년 10월 31일자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공개서한에서 “차입에 의해 재원을 조달하는 정부 지출에서 나오든 국민의 구매력을 증대시키는 데 최대의 역점을 둬야 한다”는 메시지를 간명하게 전했다. 적어도 경제정책에서 정부의 개입과 거시경제의 도입, 유효수요의 창출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는 데는 어떤 복잡한 경제학적·수학적 증명 과정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땅이라도 팠다가 덮고, 두 개의 피라미드와 고딕성당이 한 개의 피라미드와 고딕성당보다 유용하다”는 시적인 표현이 더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NIE 포인트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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