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CEO 열전 ⑧ -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45)은 국내 인터넷 업계에서 PC 기반의 웹시대와 모바일 시대를 석권한 인물로 꼽힌다. NHN과 카카오톡 성공이 가져다 준 영광이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성공사례다. “검색이 인터넷 시대를 지배했다면 모바일 시대에는 커뮤니케이션이 핵심 가치를 창출하는 서비스가 될 것으로 봤습니다.” 310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점을 일찌감치 감지한 사람이 바로 그다.
# 엄마의 손길이 그리워 김범수의 어린 시절은 가난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자녀 교육을 위해 전남 담양을 떠난 부모님은 고달프게 서울살이를 했다. 김범수와 동생들이 태어나면서 할머니를 포함한 여덟식구는 작은 방 한 칸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호구지책을 위해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일을 해야 했고 어머니 역시 식당일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누나 둘과 소년 김범수, 동생 두 명은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단칸방 생활은 그런 호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소년은 스스로 커야 했다. “집이 가난해서 이사도 엄청 자주 다녀야 했어요. 이사를 좀 다녔다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이사 횟수였어요. 이 때 가난에 대한 두려움,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어요.”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부터였다. 아버지가 정육도매업을 하면서 ‘찢어지는’ 가난에서 벗어났다. 물론 부유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옛날보다 훨씬 나아졌다.
#자유방임주의 교육
부모님은 한 번도 무엇을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냥 놔둬도 잘 알아서 하는 아들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나”라는 물음에 그는 “원칙이 그러셨던 것 같아요. 자식에게 맡겨두는 게 사실은 힘든 것이거든요. 아이를 낳고 보니 그게 얼마나 힘든 것인 줄 알았어요.”
이런 자율공부는 모든 계획을 스스로 짜는 힘을 길러주었다. 노는 것도 알아서 놀고 공부 계획도 알아서 세웠다. “어찌 생각해보면 신기하기까지 해요. 어떻게 그 정도로 아들을 믿고 맡겨둘 수 있었던 것일까 하고요. 자녀를 키우다 보면 자꾸 부모의 바람이 주입되기 마련이거든요.” 그는 또 “어린아이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우는데, 요즘 부모는 그걸 못 기다리죠. 정답을 알려주고 그것만 하게 해요. 서울대 교수인 동기가 하는 말이, ‘요즘 학생들은 아는 건 많지만 문제 해결 능력은 없다’고 하더군요.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아이들이 혼자 헤쳐 나가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어렸을 때 저는 저도 모르게 그런 것을 배웠어요.”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우다
초등학생 때 집에 백과사전 한 질이 있었는데 혼자 있을 때마다 소년은 그걸 읽고 외웠다. 백과사전을 줄줄이 꿸 정도였다. 김범수는 백과사전 지식을 기반으로 퀴즈대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게임을 만들어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는 걸 좋아했어요. 문제는 백과사전에서 냈지요.”
백과사전 지식과 게임. 이것이 훗날 인터넷 검색 사업과 게임사업에 뛰어들게 한 먼 동기는 아니었을까. 1990년대 후반 석학 레스터 서로우가 설파한 ‘지식의 지배’를 그는 적어도 20여년 전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시간이 흘러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했던 김범수는 성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대학 진학을 눈앞에 두고 그는 공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막연하게나마 공학자가 되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까지 한 번도 강요하지 않았던 부모님이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다. 부모님은 한의대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워낙 고생을 많이 한 부모님은 전문직을 원했다. 대학 도전에 실패한 그는 재수해 이듬해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 공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