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토빈세' 폐지
브라질 등 주요 신흥국에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급해진 브라질 정부는 지난 4월과 5월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상한 데 이어 지난달 금융거래세(토빈세)까지 철폐하는 등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 7월1일 연합뉴스
☞ 브라질 정부가 토빈세 부과 대상을 대폭 축소했다. 사실상 폐지나 다름없다. 2009년 10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토빈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지 3년8개월 만이다. 브라질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토빈세(Tobin’s tax)는 단기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예일대 제임스 토빈(James Tobin) 교수가 처음 제안해 토빈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토빈은 외환·채권·파생상품 거래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국제 단기 투기자본(핫머니)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각국의 통화 가치가 급등락해 경제위기가 촉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단일 세율로 세금을 부과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토빈세는 투기자본의 이동을 억제하고 나라 수입도 늘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만 실시하면 국제 자본 거래가 토빈세가 없는 곳으로 이전하게 돼 별 효과가 없다. 또 금융혁신을 저해할 수 있어 현실성이 떨어지는 아이디어 정도로 평가돼 왔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엄청나게 돈을 풀고 이 자금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각국 경제를 교란하는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 G20(주요 20개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자본 이동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부상했다.
브라질 정부가 2009년 가을 브라질 주식이나 채권, 외환,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외국 자금에 대해 일종의 토빈세로 볼 수 있는 금융거래세(IOF)를 부과해 외국 자본 유입을 제한키로 한 것은 당시 선진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풀린 외국 자본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자국 화폐인 헤알화 가치가 급등하고 자산시장에 거품이 생겼기 때문이다. 달러 자금이 브라질 시장에 몰려들면 달러 공급이 늘어 달러화 가치는 하락하는 반면 헤알화 가치는 뛰게 된다. 이렇게 되면 브라질 수출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은 약화돼 수출에 악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브라질 정부는 브라질 채권과 주식,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외국 자금과 외국으로부터 외환을 빌리는 경우 1~6%의 금융거래세를 물렸다. 하지만 그 새 상황이 바뀌어 브라질 정부로선 이제 외환 부족을 걱정해야 할 형편에 처하게 됐다. 그래서 2011년 말 외국인의 주식 투자자금에 대한 금융거래세를 없앤 데 이어 지난 6월 외국에서 유입되는 단기 채권 투자자금에 부과하던 세금(6%)과 외환 및 파생거래에 물리던 세금(1%)을 폐지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브라질의 외국 자금 규제는 1년 이하 외화 차입에 대한 금융거래세(6%)만 남게 됐다.
브라질 정부의 토빈세 폐지 배경에는 △경기 펀더멘털 약화 △외국인 자금 유입 둔화 △헤알화 약세가 자리잡고 있다.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0.9%에 그쳤다. 올 1분기 성장률도 1.9%에 머물렀다. 이처럼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브라질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2011년 8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5.25%포인트 낮췄다. 금리가 낮아지면 외국 자본이 브라질 금융상품에 투자할 매력이 줄어든다. 헤알화 가치도 지난해 3월 달러당 1.94헤알에서 최근 2.23헤알로 떨어져 역시 투자 매력을 감소시켰다. 이렇게 되면서 과거 한 달에 평균 56억달러 이상 들어오던 외국인의 브라질 자본시장 투자가 최근 15억달러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게다가 외국과의 교역(경상거래)에서 큰 폭의 적자를 내면서 보유 달러가 부족해 달러 유동성을 걱정해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 올 1~5월 경상적자는 396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89.9%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적자 규모도 지난해 2.4%에서 4.2%로 급증했다. 이처럼 브라질 경제에 빨간 불이 켜지면서 5월 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상파울루 증시의 보베스파 지수는 14.2% 급락, 4년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1997년 한국처럼 외환위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의 경상적자가 GDP의 5% 정도면 외환위기 위험성이 적지 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이 경기부양을 위해 풀었던 달러화를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을 본격적으로 쓸 경우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 금융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브라질 외에 인도 터키 인도네시아 등을 꼽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