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빈세와 나라경제의 건전성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4일 토빈세 도입을 담은 금융정책을 발표했다. 김광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힘찬경제추진단장도 “투기성 자금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토빈세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측도 토빈세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누가 대통령이 되든 토빈세 도입 가능성이 커졌다. -11월5일 연합뉴스
☞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한보철강과 기아자동차 등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사회 전체가 온통 대통령 선거에 팔려 뾰족한 대책 하나 내놓지 못해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했던 그때와 어김없는 판박이다.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한 전략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에 유력 대선 후보들이 느닷없이 토빈세 도입을 들고나왔다. 줄기는 놔둔 채 작은 가지에만 매달리는, 본말이 전도된 꼴이다.
토빈세(Tobin’s tax)는 단기 외환거래에 저율의 단일세율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이 1972년 맨 처음 제안했다. 토빈이 이런 주장을 한 건 외환·채권·파생상품·재정거래(arbitrage) 등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국제 투기자본(핫머니)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국가경제가 위기를 맞는 상황을 막아보자는 뜻에서다. 실제로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4분기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려 31.5%에 달하는 해외 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가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기간 신흥국에서도 평균 6.9%의 자본이 유출됐다.
세계 금융시장에선 매일 4조달러 규모의 외환거래가 이뤄진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수출입 등 실물거래와 관련이 있지만 나머지 절반 정도는 헤지펀드 뮤추얼펀드 연기금 등의 금융거래가 차지한다.
경제발전을 위해 외국자본의 유입이 절실한 나라라면 외국돈은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제조업 등에 직접 투자된 외국 자본은 한 나라 경제를 성장시키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적지 않게 공헌한다. 하지만 투기적 목적에서 이뤄진 외국 자본의 투자는 자칫 그 나라 경제에 독이 될 수도 있다. 외국 돈이 몰려오면 물가가 급등하고 통화가치가 치솟는다. 반대로 어느 순간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주식 채권 부동산 값과 통화 가치가 급락하고 대외 결제에 필요한 외국돈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다.
토빈이 세금을 물리자는 것은 이런 투기성 거래를 제한해 세계경제의 교란을 막아보자는 뜻이다. 토빈세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다. 선진국들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양적완화 정책 등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풀었고 이 유동성이 신흥국으로 몰려가 경제를 교란하는 데다 브릭스로 대표되는 신흥국의 위상이 상당히 올라간 게 배경이다. 게다가 토빈세로 거둬들인 세금을 빈부격차 해소 등을 위해 쓸 수도 있다. 단기 국제자본의 규모는 하루 평균 1조5000억달러로 추산된다. 여기에 0.05%의 거래세만 부과해도 연간 최소 1000억달러 이상을 거둘 수 있다.
2011년 파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급격한 자본 유출입을 막는 ‘자본이동관리원칙’에 합의했으며, IMF는 그동안 견지해왔던 자유로운 자본이동에 대한 신념을 꺾고 일부 자본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브라질 같은 나라는 실제로 토빈세와 비슷한 금융거래세를 도입하기도 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과 실제 토빈세를 부과했을 때 부작용은 없는지다. 토빈세의 맹점은 일부 국가에서만 실시하면 실효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토빈세를 물리지 않은 나라에서 외환을 거래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국제 자본거래는 토빈세를 도입하지 않은 곳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동시에 토빈세를 부과하지 않으면 별 쓸모가 없다는 얘기다. 또 토빈세를 부과할 경우 금융혁신이 저해될 수 있고, 외환거래 비용 부담이 커져 금융거래가 위축될 수 있다. 세금의 최종 납부자는 금융소비자다.
유럽은 지금 토빈세 부과를 둘러싸고 영국과 기타 나라들 간 설전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 등은 토빈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금융산업이 발달한 영국은 토빈세 도입에 극력 반대한다. 이에 대해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는 “토빈의 최대 관심은 완전고용으로 토빈이 살아있다면 정치적 목적의 토빈세 도입에 기분 좋을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나라경제에 부작용을 줄 수 있는 자금이 대규모로 몰려온다면 자본 유출입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정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토빈세처럼 논란이 많은 세금을 우리나라만 도입하는 건 자칫 대한민국을 국제금융시장의 ‘왕따’로 만들고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는 빌미만 줄 위험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