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권리이론적 자유주의 선구자 에인 랜드
20세기 들어 집단주의가 번져가면서 지구촌의 자유는 점차 위축돼 갔다. 독일 이탈리아 등 서방 국가에서도 러시아 스탈린식 폭정이 지배했다. 상당수 지식인은 폭군의 죄를 눈감아주거나 정당화하기까지 했다. 자유의 마지막 희망처럼 보였던 미국과 영국마저도 점차 집단주의 흐름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유를 외치며 인류를 구원하는 길은 ‘최소 국가’라고 주장한 인물이 미국 여류소설가이자 사회 철학자인 에인 랜드(Ayn Rand)였다. 최소국가란 폭력 사기 기만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계약을 집행하는 과제만을 수행하는 일종의 자유방임 국가다. 이런 국가만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랜드가 자유주의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은 그가 태어나 성장한 러시아에서의 체험 때문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약국을 경영해 생활이 넉넉한 편이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약국은 국유화됐고, 가족은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어려서부터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대학에 진학해 역사와 철학을 전공했지만 공산주의 박해로 꿈을 이루기 어려워지자 그는 홀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작가적 재주를 타고난 랜드는 자유주의 사회철학을 개발, 이를 소설과 논문 등의 형태로 발표했다. 그의 사상 핵심은 권리이론인데 이는 인간본성에서 도출한 것이다. 본래 인간은 지적 능력으로 자기 삶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랜드는 설명한다. 이기심이 덕성의 본질이고 나를 위해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반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주의는 죽음의 철학이며 부도덕하다고 주장한다.
랜드는 인간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게 권리라고 강조했다. 이 권리는 두 가지다. 첫째 자기소유권이다. 누구나 자신의 신체와 지적 능력을 소유할 권리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그런 자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도 있다.
둘째는 재산권인데 이는 타인과의 자발적 교환과 생산 활동을 통해 재산을 습득할 권리다. 이런 권리는 개인이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에서 나온다. 재산권은 자유롭고 문명화된 합리적 사회의 징표라는 게 랜드의 주장이다. 권리란 누구나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이유에서다. 누구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의무가 있기에 권리는 인간을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도 들어 있다. 이런 권리이론에 기초한 랜드의 자본주의 옹호론도 흥미롭다. 자본주의가 소중한 이유는 경제적 번영만이 아니라 인성에서 도출된 자유, 재산, 생명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진지하게 존중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랜드는 시장사회는 모든 사람을 자유롭고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는 사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호혜적 기회를 이용할 수 있는 체제가 자본주의라고 본다. 인간들은 독립적 판단과 노동의 결실을 통해 스스로 경제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고 그래서 자본주의에서만이 노동의 즐거움과 자부심,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가는 세상을 떠받치는 영웅이라는 랜드의 주장도 주목할 만하다. 관개시설 제약 의료기 등을 발명하고 수백만 가지의 혁신으로 공포, 유행병, 기근에서 인간을 구출하고 소득 증대 일자리 창출 등 풍요의 세상을 만든 게 기업가라고 지적한다. 원인이 정부의 개입에 있음에도 문제나 위기가 있을 때마다 기업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규제 늘리기와 증세 등 통제를 강화하는 건 최악의 불의이고, 기업에 대한 비난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핵심을 공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는다.
흥미로운 것은 랜드의 국가관이다. 무정부주의는 순진한 생각이라는 게 그의 인식이다. 조직화된 정부가 없으면 필연적으로 범죄자가 등장한다는 이유에서다. 국가에는 국방, 경찰업무, 분쟁해결을 위한 법률서비스 등 권리를 보호하는 과제 그 이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은정부라고 해도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에 큰 정부로 변신할 위험성이 상존한다. 랜드의 사상에는 그런 위험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와 헌법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 없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역사에서 이타심은 정치권력과 폭정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다는 이유로 이타심 그 자체가 부도덕하다는 랜드의 인식도 비판 대상이다. 강제적 이타주의는 분명히 부도덕하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타인을 돌봐주는 게 내 행복의 침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족 친지 등 소규모 사회는 자발적 이타심을 기초로 하고 있고 사회의 안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다.
일부 비판의 여지가 있음에도 랜드는 권리이론의 새로운 철학적 기초에서 자유주의를 개발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