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사회주의 선구자 존 스튜어트 밀
19세기 전반기 영국을 비롯해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사회에는 시민들의 불만이 가득했다. 산업화를 이끈 자본주의는 그들이 기대한 만큼 경제적 성과가 없다는 진단과 빈곤은 숙명이라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우울한 예측이 난무했다. 그런 만큼 사회주의 유령들도 유럽 지역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공리주의에 근거해 자유주의는 절반은 틀린 이론이라고 선언하며 분배 중시를 통해 인류 번영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갈파한 사회 철학자가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다.
공리주의는 인간이란 본래 편익은 극대화하고 비용은 최소화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수지타산에 맞춰 행동하는 게 인간이라는 뜻이다. 이런 시각을 법, 시장, 정책에도 적용해 사회적 비용보다 더 큰 사회적 편익을 가져다주는 법이 좋은 법이라고 평가하는 게 공리주의다. 그 비용과 편익은 법이 개인들에게 미치는 피해와 이익을 서로 합한 것이다.
편익-비용을 양적으로만 계산해 정책을 판단하는 경우 이를 양적 공리주의라고 부르는데, 밀은 이런 양적 공리주의 대신 질적 공리주의를 추구했다.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의, 존엄, 평등과 같은 정신적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한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밀의 공리주의적 시장관이다. 시장은 성장을 촉진하기는 하지만 노동계급의 비극과 분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시장은 양적으로 볼 때는 좋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나쁘다는 의미다. 정부가 재분배를 통해 빈곤을 해소하고 분배정의를 달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밀은 나눌 파이를 줄이지 않고는 분배하기 어렵다는 세간의 이론적 저항에 부딪친다. 그는 부의 분배와 생산은 엄격히 분리돼 있다는 이유를 들어 나눌 파이의 규모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서도 정부가 다양한 분배 정책을 통해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밀은 부의 성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성장을 늘릴 필요도 없고 자본과 부의 성장이 정체된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부유한 단계에서 사람들은 물질적 이득보다는 나눔과 건전한 사회기품 같은 정신적인 것을 중시한다는 이유에서다. 사회주의가 저절로 실현된다는 얘기다. 사회주의만이 빈곤을 해결하고 정의를 실현하기에 그것이 인류의 미래라는 게 밀의 상상이다.
그러나 밀의 사상은 기발하지만 결함 투성이라는 게 일반 경제학의 확립된 인식이다. 생산과 분배가 분리 가능하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 두 부분은 가격을 통해 연결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세계이고 세금부담이 무거우면 일할 의욕이 줄어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정체된 경제라고 해도 분배가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에도 오류가 있다. 성장 없는 경제 상황에선 흔히 사람들이 삶의 비전을 잃게 되고 사회엔 불안과 불신이 팽배해지게 마련이다. 성장을 유지하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사회는 활기차고 너그러움과 다양성에 대한 관용, 공동체정신 등 사회기품도 살아난다는 벤저민 프리드먼 하버드대 교수의 최근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유와 번영을 위한 밀의 개혁정책이다. 그는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세율을 증가시키는 누진세 대신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일정한 세율로 과세하는 단일세율을 주장한다. 분배가 생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과 모순되지만 그는 고소득층에 더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것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는 부자들을 처벌하는 것과 같다는 논리를 편다.
밀은 소득세에서 관용을 베푼 부자들에 대해 상속세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속은 기회균등의 권리를 침해하고 상속받는 자녀에게는 불로소득이기에 고율의 세금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어떤 이유로도 그 정당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토지사유화도 억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시적 소비와 유흥에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할 것도 제안했다. 빈민구제와 노동자의 권익, 유치산업 보호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법 이전에 자유와 권리는 없고 비로소 입법을 통해 그것들이 창출된다는 게 밀의 공리주의적 자유론이다. 법도 개인의 재산과 자유를 보호하는 데 그 역할이 있는 게 아니라 ‘공공이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게 그의 법사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