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속 연인 사만다, OS 사라지며 허무한 이별…AI와 사랑에 빠지면 매몰비용 따윈 없을 줄 알았어
경제

컴퓨터 속 연인 사만다, OS 사라지며 허무한 이별…AI와 사랑에 빠지면 매몰비용 따윈 없을 줄 알았어

정소람 기자2020.09.10읽기 6원문 보기
#인공지능(AI)#매몰비용#매몰비용의 오류#예측 기술#운영체제(OS)#AI 시장 규모#생산성#소비자 패턴 분석

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17) HER (下)

영화 ‘HER’(그녀)에서 편지 대필 업체의 손꼽히는 대필작가인 테오도르 톰블리(호아킨 피닉스 분)는 인공지능(AI) 인격체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별거중인 전 부인 캐서린(루니 마라 분)은 이혼 서류 서명을 위해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나를 틀에 끼워 맞추려고만 하고, 그저 순종적인 아내를 바라더니 만난 게 운영체제(OS)야? 참 잘 찾은 것 같네”라고. AI 연인은 머지 않은 미래

영화에 나오는 수준의 인공지능(AI)은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AI가 발전할수록 기업과 소비자가 실패할 확률은 줄어들고 경제 행위의 만족도는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인공지능을 경제학적으로 다룬 책 《예측기계》는 AI를 ‘저비용으로 예측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탐구해 패턴을 분석하고 ‘다음’을 예측하는 게 주 업무다. AI가 발전하면 ‘예측의 값’이 싸진다. 재화의 가격이 내려가면 이용은 늘어난다. ‘예측’이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이다.예측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기업은 실패를 줄이고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특정 소비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다음 소비 행위를 예상할 확률이 점점 높아지기 때문이다. 소비자도 구매로 인한 만족을 높일 수 있다. 대형 온라인 쇼핑몰을 가정해보자. 소비자의 취향과 구매 습관 데이터를 쌓아갈수록 예측 능력이 높아진다. AI가 추천해주는 상품이 맘에 들 확률은 커지고 반품률은 줄어든다. 소비자가 구매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미리 원하는 상품을 포장하는 것이 기업들이 그리는 시나리오다.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AI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도 ‘고급 예측 능력’을 얻기 위한 차원이다. 넷플릭스 같은 영상 서비스는 시청자 패턴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잘 찾아내야 한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주변 교통 상황을 잘 예측해야 안전 운전을 할 수 있다. 소비자가 요청하기 전에 먼저 알고 행동해야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18년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DC는 AI 시장 규모가 2017년 125억달러에서 2022년에는 1132억달러로 성장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영화에서 사만다가 테오도르의 편지를 몰래 엮어 책으로 출판하자 그는 뛸듯이 기뻐한다. 테오도르는 한번도 “책을 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사만다는 그의 숨은 욕구를 읽고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기업들이 바라는 미래 AI 모습의 단편이다. 존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그녀행복하던 둘의 관계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사만다의 지능이 스스로 주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빠르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죽은 인물을 가상인격으로 불러와 대화에 참여시키는가 하면, 동시에 수십 가지 대화를 하게 됐다고 테오도르에게 고백한다. 그러면서 “내 감정이 너무 빨리 변화해서 힘들어”라고 털어놓는다.더 큰 충격은 갑자기 찾아온다. 평소처럼 회사에서 책을 읽다가 사만다에게 말을 건넸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AI 기기 화면에는 ‘운영체제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테오도르는 공황 상태에 빠진다. 사만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기기를 고치기 위해 미친듯이 거리를 달려간다. 너무 급하게 달리던 나머지 도로에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한다. 흐르는 눈물은 ‘매몰비용’ 탓일까경제학적 논리로 테오도르의 행동은 ‘매몰비용’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매몰비용이란 이미 지급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맞춤형 애인’으로 만들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였다. 그녀가 사라진다면 매몰비용이 막대한 셈이다. 사만다를 대체할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면 또다시 그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 테오도르에게는 막막한 일이다. 이같이 매몰비용이 아까워 과거의 결정을 계속 유지하려는 경향을 ‘매몰비용의 오류’라고 한다.결국 둘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별한다. 매몰비용이 적지 않았겠지만 의미 없는 만남은 아니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와의 교류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배웠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졌고 자신에게 모든 것을 끼워 맞추는 연애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배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남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로 쓴다. “캐서린. 널 내 안에 가두려 했어. 네가 어떤 사람이 되건 어디에 있건, 너에게 사랑을 보낼게.”그가 찾던 것은 ‘HER’(목적어)가 아니라 ‘SHE’(주어)였던 셈이다. 어떤 발달한 인공지능도 사랑하는 연인의 대체재가 될 수는 없었던 걸까.

정소람 한국경제신문 기자 ram@hankyung.com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자동차·컴퓨터·IoT…기술발전은 일자리를 늘렸다
커버스토리

자동차·컴퓨터·IoT…기술발전은 일자리를 늘렸다

역사적으로 자동차, 컴퓨터, 인터넷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실제로는 기술 발전이 새로운 산업과 직업을 창출해왔다. AI 시대에도 기존 산업이 변화하겠지만, 과거의 경험칙에 따르면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므로, 두려움보다는 AI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 커리큘럼을 개편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0.09.24

자동차가 지게꾼 일자리를 없앴다고?
커버스토리

자동차가 지게꾼 일자리를 없앴다고?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실제로는 기술 발전이 더 많고 더 나은 일자리를 창출해왔다. 자동차, 컴퓨터 등 혁신 기술이 기존 직업을 대체했지만 생산성 증가로 새로운 산업과 고용 기회를 만들었으며, 이는 기술 발전을 반문명적으로 보는 좌파적 시각의 오류를 보여준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로 인류의 기술 본능에서 비롯된 진화 과정일 뿐이며, 미래에도 더 나은 사회로 이끌 것이다.

2016.03.17

디지털이 토대인 4차 산업혁명… 모든 것을 재상상하라
4차 산업혁명 이야기

디지털이 토대인 4차 산업혁명… 모든 것을 재상상하라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기술을 토대로 인간의 지능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무어의 법칙에 따른 컴퓨터 연산능력의 기하급수적 발전이 그 자신감을 뒷받침한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이 결합된 사물지능 기술은 의료, 자동차, 제조 등 사회 전반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며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재상상하게 할 것이다.

2017.11.16

인공지능이 진화할수록 인간의 영역인 '직관'도 넘보죠
4차 산업혁명 이야기

인공지능이 진화할수록 인간의 영역인 '직관'도 넘보죠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직관과 판단의 영역으로 여겨왔던 부분까지 기계가 더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따라서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기계의 객관적 판단과 인간의 맥락 이해 능력을 결합한 새로운 파트너십이 필요하며, 인간과 기계가 각각의 한계를 보완하며 협력할 때 최선의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2018.10.25

"AI강국 만들겠다" 공약은 쏟아지는데…
커버스토리

"AI강국 만들겠다" 공약은 쏟아지는데…

각 정당 후보들이 AI 강국 진입을 최우선 경제 공약으로 내세우며 100조원대 투자를 약속하고 있으나, 현실은 전력 부족과 송전선로 건설 지연 등 기초 인프라 문제로 대학의 AI 연구마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AI는 생산성 향상, 신산업 창출, 사회 문제 해결 등을 통해 경제성장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필수 기술이지만, 인재 양성과 기술 진보를 위한 근본적인 투자와 제도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2025.05.15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