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폐지 요건, 완화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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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폐지 요건, 완화해야 할까

서욱진 기자2025.02.06읽기 6원문 보기
#상장폐지#기업공개(IPO)#좀비기업#주식시장 밸류업#시가총액#유가증권시장(코스피)#코스닥#감사의견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최근 상장폐지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저성과 기업의 퇴출을 쉽게 만드는 내용이 담겼다. 한번 기업공개(IPO), 즉 증시 상장을 하면 퇴출당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좀비(부실) 기업’이 많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저성과 기업이 많은 증시는 투자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주식시장 밸류업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요건을 너무 완화하면 억울하게 상장폐지되는 기업이 나올 수도 있다.

과연 상장 유지 요건을 강화하는 게 맞는 걸까.[찬성] 10년간 매출·시총 미달 퇴출 없어…상장사 늘어났지만 지수 못 올라금융당국은 부실기업 퇴출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다. 우선 상장을 유지하려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매출과 시가총액 기준이 높아진다. 지금은 유가증권(코스피) 시장은 매출 50억원, 시총 50억원인 것을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각각 300억원과 500억원으로 상향한다. 코스닥 시장도 현재 매출 30억원, 시총 30억원 기준이 매출 100억원, 시총 300억원으로 높아진다. 금융당국은 현행 기준이 유명무실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소 매출과 시총에 미달해 퇴출당한 상장사가 지난 10년간 단 한 곳도 없었을 만큼 실효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 4월부터 유가증권 상장사의 상장폐지 절차 기간은 최장 4년에서 2년으로, 코스닥 상장사의 상장폐지 절차는 3심제에서 2심제로 줄이기로 했다. 2회 연속 감사의견 미달이면 즉시 내보내는 것도 달라지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증시는 한번 상장하면 쉽게 퇴출당하지 않았다. 최근 5년(2020~2024년)간 연평균 99곳이 한국 증시에 신규 상장했지만, 상장폐지는 25곳밖에 없었다. 이렇다 보니 상장기업 수는 계속 늘었다. 최근 5년간 상장기업이 2105개에서 2478개로 17.7% 불어났다.

이 같은 증가율은 미국(3.5%), 일본(6.8%), 대만(8.7%)을 크게 웃돈다. 한국 증시보다 더 깐깐한 상장 유지 요건을 적용하고 있는 미국 나스닥 시장 상장사는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줄었다. 문제는 기업 수는 많아졌지만, 지수는 많이 오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주가지수 상승률은 3.8%에 그쳐 미국(82.6%), 일본(65.4%) 대만(110.4%)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낮았다. 이는 곧 상장기업 가운데 주가가 상승하기 힘든 저성과 기업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부실기업 퇴출을 쉽게 만들어 증시의 질적 개선을 이뤄야 한다는 게 퇴출 요건 완화를 주장하는 쪽 근거이다.

[반대] 선의의 피해기업 나올 수도…기술특례 등에 예외 적용해야저성과 기업의 퇴출을 늘려 증시의 질적 성장을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한번 상장하면 부실기업이 되어도 계속 자리를 꿰차고 있는 ‘비활력적인’ 증시는 투자자 입장에서 매력적이지 못 하다. 하지만 상장폐지를 쉽게 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증시 퇴출은 곧 ‘사형선고’와도 같기 때문이다. 퇴출이 결정되면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 주가가 급락하고, 금융사나 거래처는 해당 기업의 자금회수에 나선다. 나빠진 평판에 소비자까지 외면해 멀쩡한 기업도 한순간에 망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가지 않더라도, 비상장사는 증자나 채권 발행 등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의 신청이나 예외 인정 등을 통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장잠재력이 충분한 기업이 도매금으로 퇴출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매출과 시총 기준을 강화하기 전에 한국 증시의 저평가 상황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탄핵 정국 등으로 한국 증시는 상당한 저평가 상태라는 분석이 대세다. 기업들의 순익 창출 능력과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디스카운트를 받고 있다. 투자자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업종 기업은 더 그렇다.

가령 코스닥 상장 A사는 3년간 매출액이 700억원대, 순이익이 60억원대를 기록할 정도로 건실하지만, 투자자의 외면을 받아 시총이 300억원에 못 미친다. 이런 기업도 퇴출시키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천재지변 등으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있을 수 있다. 기술력 등 회복 잠재력은 충분한 기업인데도 상장폐지시키면 회생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특히 바이오·제약 업종 기업이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기술특례상장 기업들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이들은 상장 후 5년간은 매출 요건을 적용받지 않고 있다. 그런데 5년 후 매출 요건이 지금 금융당국 발표대로 훌쩍 높아지면 충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신약 개발 등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만한 매출을 어디서 낼 수 있겠는가. 따라서 기술특례 기업은 예외 규정을 두는 것을 고려해볼 만한다. √ 생각하기 - 연구개발 등 추가 기준 도입 검토를 좀비 기업을 내보내 시장의 질적 향상을 이루려는 조치는 환영할 만하다. 미국·일본 등 해외 증시와 비교해 한국 증시의 비역동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는 격언은 증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 기업이 나와선 안 된다는 지적도 흘려들을 수 없다. 일시적으로 상황이 나빠진 기업을 퇴출시키는 것은 영영 사다리를 치우는 것과 같다.

지금은 한국 증시의 간판 기업인 SK하이닉스도 과거 ‘동전주’로 불릴 만큼 어려울 때가 있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최종 퇴출에 앞서 이의신청을 받아 억울한 일이 생기는 걸 막는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바이오 등 특례상장 기업에는 예외 기준을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매출과 시총 외 기업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기술력, 연구개발(R&D) 등 추가적 지표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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