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유럽의회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지난달 22일 영국과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같은달 28일까지 28개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치러졌다. 3억2000만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의회선거는 8억명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지상 최대 민주주의 축제’라고 불리는 인도 총선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선거였다.
최대 정파인 중도우파 유럽국민당그룹(EPP)이 전체 751석 가운데 214석을 차지해 제1당을 유지했지만 EU 통합에 반대하는 극우, 극좌 정당이 184석을 차지해 3분의 1가량의 의석을 확보했다. 이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통합 회의론자들이 브뤼셀을 강타했다’고 선거 결과를 평가했다.
확산되는 반EU 정서
이번 제8대 유럽의회 선거의 최대 이변은 프랑스에서 벌어졌다. 반(反)EU 정책을 정면에 내세운 극우정당 국민전선(NF)이 24.8%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창당 40년 만에 전국단위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것. 유럽의회의 프랑스 의석(74석)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25석을 차지할 수 있는 지지율이다.
5년 전 총선의 3석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는 지난달 28일 유럽의회가 자리한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6월24일까지 극우 정당들의 독자적인 교섭단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르펜 대표는 “이번 선거 결과는 EU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광범위한 거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프랑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말했다.
반면 우파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속한 집권사회당(PS)의 지지율은 각각 21%와 14%에 그쳤다.
영국에서도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이 득표율 28%를 기록하며 최다 의석을 확보했다.
영국 역사상 보수당과 노동당이 아닌 제3의 정당이 1위에 오른 것은 108년 만이다. 그리스 역시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26% 넘는 지지율로 집권여당을 눌렀다. 독일에서도 유로화 통용을 반대해온 신생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7%의 지지율을 확보해 원내 입성에 성공하게 됐다.
고실업·성장 정체가 원인
전문가들은 장기화한 경기침체가 기존 주요 정당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재정위기 이후 해결되지 않은 실업문제와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경제성장이 유권자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것. 극우정당이 선전한 프랑스의 경우 지난해 실업률이 10%가 넘고 0%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이 단적인 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이번 선거는 수십년에 걸쳐 누적된 금융, 경제, 사회적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EU 회의론자 비중이 급증하면서 통합 속도가 느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EU는 2002년 유로화를 단일통화로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금융시스템과 재정정책에 이르는 경제적 통합을 완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제통합이 완성되면 국방, 외교 등 영역을 포괄하는 보다 강력한 정치적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로 당장 지난달 승인된 은행동맹 등 금융개혁안부터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은행동맹은 유로존 은행을 총괄 감독하는 범국가적 관리 기구를 창설, 유로존 내 부실은행 지원과 청산 등을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국가별로 제도에 따른 이해득실이 달라 도입 여부를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EU집행위원장 선임 갈등의 새로운 도화선
선거가 끝난 뒤 비대해진 EU의 역할에 대한 각국 정상의 불만이 쏟아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가 지나치게 커졌고 너무 국가들을 쥐고 흔들려고 한다”며 “EU를 예전처럼 운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EU의 권한 확대 우려를 표하며 “EU는 성장과 일자리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