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칼럼
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8 · 15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보게 해주는 박지향 서울대 교수의 칼럼을 싣습니다.
이 글은 지난 12일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게재된 것으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전재합니다.
한국, 시장경제 받아들여 산업화·민주화 성공
인도, 사회주의 경제발전에 집착, 근대화 늦어져 8월은 우리 정치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달이다.
지금부터 100년 전 8월,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35년 후 8월에 해방되었으며, 그로부터 3년 후 8월에 새로운 국가를 출범시켰다.
하필이면 근대화에 몰입해 있던 강성(强性)국가인 메이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급하게 동화정책을 추구한 일제는 자신들의 법과 제도를 우리에게 강요했고, 그것은 근대적인 경제체제와 법치의 틀을 마련했지만 동시에 대단히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 국가라는 유산을 남겼다.
해방정국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가운데 어떤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는 이후 발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는데 다행히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그 와중에 동족상쟁(同族相爭)의 비극도 겪었지만 우리는 이제 100년 전 초라한 모습과 전혀 다른 위상을 누리고 있다.
독립 당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실망시킨 대표적 경우로 인도를 들 수 있는데, 그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가 이룬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명쾌하게 드러난다.
대한민국의 건국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인 1947년 8월15일, 인도는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인도는 엄청난 크기와 찬란한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위대한 민족지도자 간디를 배출했다는 사실 때문에 당시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간디는 광적인 힌두교도의 총성에 사라졌지만 그를 잇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자와할랄 네루가 있었다.
네루는 자신을 '인도를 통치하는 마지막 영국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질과 정신에서는 자유주의자였지만 젊은 시절의 혈기에 받아들인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못한 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탱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소련식 통제경제를 도입하고 민간부문의 활력을 억눌렀다.
'인도 경제의 후진성은 네루의 유산'이라는 것이 오늘날의 정통 해석이다.
간디도 인도 경제 발전에 도움은커녕 해를 끼쳤다.
물레로 대표되는 촌락 경제를 선호한 간디의 유산은 인도인들에게 근대화를 '악(惡)'으로 바라보는 정서를 남겼던 것이다.
인도는 1990년대 초에야 두 사람의 망령을 떨쳐버리고 시장경제와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덕분에 한때 50%에 육박하던 빈곤율이 매년 감소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