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미국 뉴욕 거리는 말똥 천지였다. 곳곳에 높이가 2m에 달하는 말똥 더미가 쌓여 있었다. 말의 분뇨에서 나는 악취와 셀 수 없이 달려드는 파리 떼는 도시의 상징이었다. 1867년 뉴욕에선 일주일에 평균 4명의 보행자가 말에 치여 사망했다. 뉴욕만 이런 것이 아니었다. 1870년 보스턴은 인구 25만 명에 말이 5만 마리나 됐다. 시카고에선 매년 말의 사체만 7000마리씩 나왔다.
말은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존재였다. 1872년 말들이 집단으로 감기에 걸리면서 미국 동북부 주요 도시는 그야말로 마비 상태였다. 대중교통 역할을 담당하던 마차업체는 운행을 무기한 연기했다. 도시 내 운송을 전담하던 말이 사라지면서 기차역엔 화물이 쌓였고, 도시민의 생활에 필요한 우유와 얼음, 채소, 맥주 등은 동이 났다. 공장들이 멈춰 섰고 소방업무와 쓰레기 처리 같은 도시의 행정 업무도 발이 묶였다. 교통과 물류 유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위상은 수백 년간 절대적이었다. 말이 끄는 승합마차(omnibus)는 오늘날 택시나 버스에 비견되는 대도시의 대표적 출퇴근용 교통수단이었다. 승합마차는 1828년 프랑스 파리에 처음 등장했고, 1832년 영국 런던에서도 주요 이동 수단으로 부상했다. 미국에선 1853년 뉴욕에 처음 도입됐다. 사업가 제이컵 샤프는 뉴욕 브로드웨이 주요 도로에서 3100대의 승합마차를 운영했다. 이런 승합마차 서비스는 1840~1850년대 미국 동북부와 중서부 주요 도시로 빠르게 확산했다.
교통수단으로서 말의 위상은 너무나 확고해 흔들릴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동차가 등장하자 말은 순식간에 시장에서 밀려났다. 원하는 때 움직일 수 있고, 사료를 먹지도 않고 배설물도 없는 자동차는 삽시간에 말을 압도했다. ‘말 없는 마차(horseless carriage)’는 오리지널 마차를 단숨에 대체했다.
1879년 독일의 카를 벤츠가 내연기관차를 개발한 이후 차의 성능은 빠르게 개선됐다. 1906년 빌헬름 마이바흐가 선보인 6기통 엔진은 오늘날 혼다 ‘시빅’의 4기통 엔진에 맞먹는 출력을 자랑할 정도였다.
자동차는 ‘태생’은 유럽산이었지만 ‘보급’은 미국에서 꽃피웠다. 1900년 미국에는 자동차 등록 대수가 8000대에 그쳤지만, 불과 10년 만에 46만8000대로 치솟았다. 다시 10년이 지난 1920년에는 자동차 수가 900만 대로 폭증했고, 1929년에는 2300만 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처음부터 자동차가 효과적인 교통수단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버몬트의 한 의사와 그의 운전사가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동부 뉴욕까지 자동차로 첫 대륙횡단 여행을 하는 데 걸린 시일은 63일에 달했다.

하지만 자동차 가격이 급격히 내려가고, 성능은 빠르게 치솟으면서 경제사가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말한 ‘미국을 비가역적으로 바꾼 변화’가 도래했다. 1908년 첫 생산을 한 포드의 ‘모델 T’는 1909~1910년 대당 950달러에 판매됐지만, 1923년에는 대당 가격이 269달러까지 떨어졌다. 1928년에는 첫 출시 모델(무게 1200파운드, 22마력)보다 무게와 마력이 두 배(무게 2050파운드, 40마력) 가까이 커졌지만, 가격은 절반 가까운(480달러) 신형 모델을 내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