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 흔든 썰 풉니다 (feat. 영국)
세계를 바꾼 순간들

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 흔든 썰 풉니다 (feat. 영국)

김동욱 기자2026.04.09읽기 6원문 보기
#산업혁명#반산업 정서#적기조례#산업자본가의 지주화#빅토리아 시대#마틴 위너#제조업 쇠퇴#규제

대영제국 영광 이끈 엔지니어

스티븐슨, 브루넬 등 천재 기술자들

증기기관·철도 등 기술혁신 이끌어

사회 변화에 뒤처진 가치관

토지 귀족의 농업적 가치관 여전

지식인들 '반기업 정서' 확대재생산

발전 가로막는 규제 양산

교외생활 동경, 변화 꺼리는 풍조 확산

'적기조례' '전기조명법' 기술발전 막아

19세기 영국 ‘적기조례’의 모습을 그린 풍자화 /위키피디아 제공1859년 말에서 1860년 초 몇 달 사이에 영국에선 ‘천재’로 불리던 엔지니어 3명이 잇달아 사망했다. 증기기관 보급과 철도 건설을 주도한 이점바드 브루넬, 로버트 스티븐슨, 조지프 로크가 그 주인공이었다.특히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스티븐슨의 장례식에는 조문객이 구름처럼 몰렸다고 전해진다. 이는 영국 사회가 엔지니어의 죽음에 마음 깊이 우러나는 애도를 표한 마지막 이벤트로 평가된다.국가의 부흥기를 주도하던 위대한 기술자들의 잇따른 죽음 이후, 기술자들의 개척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기리는 풍조는 점차 눈에 띄게 약해졌다. 이는 영국이 산업혁명의 고도화 흐름에서 밀려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산업혁명을 주도했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영국이 쇠퇴한 이유에 대한 질문은 오랜 기간 경제사학계에서 열띤 논쟁이 오간 핵심 주제였다. 영국의 전성기로 평가되는 빅토리아 시대 후기는 사회 모순이 응축된 ‘경제 쇠퇴의 씨앗’이 뿌려진 시기로 특히 주목받았다.이 시대의 문제점을 살펴본 여러 이론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마틴 위너 미국 라이스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영국 문화와 산업 정신의 쇠퇴(English Culture and the Decline of the Industrial Spirit: 1850~1980)>라는 책에서 영국 사회 저변에 깔린 반(反)산업 정서와 문화가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어떻게 가로막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영국 사회의 성장과 부흥을 이끈 것은 산업 자본가였지만, 빅토리아 시기까지 사회의 주도권은 여전히 전통 지배계급이 쥐고 있었다. 신사층(gentry)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지배계급은 토지 귀족의 농업적 가치관을 중시하고 있었다.그들은 기업인으로 표방되는 부르주아의 가치에 비판적이었다. 그리고 이른바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대표되는 고등교육 시스템을 기반으로 이 같은 반산업·반기업 정서는 확대 재생산됐다.자수성가한 부르주아 기업가의 후손은 사립학교나 대학과 같은 제도를 통해 영국 주류 세력이 양산한 반산업적 가치를 받아들였다. 토머스 칼라일, 찰스 디킨스, 존 러스킨 등 소수의 지식인이 공유한 반산업주의 정서는 기업가와 전문 직업인, 관료 등으로 빠르게 퍼졌다.반산업 정신은 사회 곳곳에 깊숙이 침투했다. 도시 생활과 자본주의, 산업주의는 혐오의 대상이 됐다. 산업사회는 ‘어둡고 악마의 소굴 같은 공장’이라는 대표 이미지로 낙인찍혔다. 반면 ‘잉글랜드 정원’으로 표현되는 전원적 상징은 긍정적 가치로 부상했다.이런 사회 풍조 속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 제조업 2세들은 혁신과 이윤추구, 수완 등이 필요한 기업 경영에 걸맞지 않은 기질과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기업가들이 공장보다 교외 생활을 동경했고, 변화를 꺼렸다. 아마추어적 소양을 숭상하고 여가를 즐기려는 지주 문화가 널리 퍼졌다. 막 피어나던 부르주아의 가치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고, ‘산업가의 문화’는 독립된 존재로 자리 잡지 못한 채 농업주의적 전통 가치에 흡수됐다.19세기 영국의 산업가들은 신사층의 주장에 동화됐고, 산업자본 대신 전통 젠트리의 영역이던 지대소득을 추구하거나 금융 분야로 앞다퉈 진출했다. ‘산업자본가의 지주화(The gentrification of Industrialist)’가 촉진됐다. 그 결과 제조업 활동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업가들의 발목을 잡는 전근대적 규제들은 빠르게 마수를 뻗쳐갔다. 사회는 혁신과 발전보다 기득권과의 타협을 택했다. 1865년 증기자동차가 선보인 이후 마차업자들의 거센 항의로 제정된 소위 ‘적기조례(赤旗條例, Red Flag Act)’가 대표적이다. 정식 명칭은 ‘고속도로에서의 동력기관에 관한 법(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인 이 법은 도로의 손상을 막고, 주변의 말을 놀라게 하지 않으며, 좁은 도로를 자동차가 가로막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됐다.하지만 실상은 기존의 마차 사업을 보호하고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자동차가 운행하려면 반드시 운전사와 기관원, 기수 등 3명이 있어야 했다.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6.4km로, 시가지에선 시속 3.2km로 제한했다. 차량은 도로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증기를 배출하는 것도 금지됐다.무엇보다 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을 들고, 밤에는 붉은 등을 손에 쥐고 자동차 60야드(약 55m) 앞에서 차를 선도하도록 했다. 붉은 깃발을 앞세워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게 한 것이다.그뿐 아니라 1882년에는 영국 정부가 “전력은 공공재이고 전기가 화재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전기조명법(Electric Lighting Acts)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민간 전기사업자는 사업을 시작한 뒤 21년이 지나면 전력 생산권을 공공 회사에 양도하도록 강제했다.

적기조례와 전기조명법처럼 자국 산업의 손발을 묶는 황당한 규제가 잇따라 도입되면서 안 그래도 기업가 정신을 상실한 영국의 산업은 쇠퇴가 가속했다. 이처럼 영국 기업들이 발이 묶인 사이 자동차와 전력산업 등 2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은 독일과 미국으로 넘어갔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영광은 그렇게 슬금슬금 기반을 상실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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