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500원 위에서 고공행진하고 있다. 반도체 슈퍼 호황에 경상수지 흑자가 매달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속속 상향 조정되지만, 환율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주식 매도세와 세계 인플레이션이 촉발한 강달러 현상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경상수지 흑자와 높은 경제성장률은 원화 가치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수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어나고, 성장률이 높을수록 원화 자산 투자 매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공식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737억8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8배 수준에 달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역시 전 분기 대비 1.7%로 추정치(0.9%)를 크게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최근 환율 흐름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달러 자본의 국경 이동’을 지목하고 있다. 해외와 국내 증시를 오가는 투자 자금 규모가 급격히 커져 환율에 미치는 영향력이 확대됐다. 연초까지는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투자 확대가 달러 수요를 키우며 원화 약세를 유발했다.
최근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수급 요인은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증시 매도세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10거래일 동안 국내 증시에서 28조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연초 이후 누적 순매도 규모는 82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전체 순매도 규모(약 7조원)의 12배에 이른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 수익률이 급등하자 차익 실현 움직임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포트폴리오 내 한국 주식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자 ‘리밸런싱’에 나섰다는 뜻이다.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99를 넘어섰다. 지난 15일에도 99.28까지 급등하는 등 일주일 새 1.41% 올랐다.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국 물가 지표가 급등하자 글로벌 국채금리가 치솟으며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진 영향이다. 최근 이어지는 국제 유가 급등세도 환율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구조적으로는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차가 환율의 구조적 강세를 야기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신성환 전 금융통화위원은 “가장 중요한 요인은 양국의 금리 역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미 관세협상 때 미국에 10년간 매년 최대 2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한 것도 원화 약세의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같은 상승은 일시적 현상일 확률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경제 체력을 고려한다면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안착하기 어렵다”며 “중동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완화한다면 환율도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