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후반 두개학을 확립한 네덜란드 해부학자 페트루스 캄페르는 원래 화가 출신이었다. 그는 1770년 암스테르담의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교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한 재능 있는 학생이었다.
사람의 외모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캄페르는 ‘사람 얼굴의 각도’과 관련한 대단한 ‘발견’을 해냈다. 흑인과 칼무크인(서몽골족), 그리고 유럽 인종의 두개골을 비교·관찰한 결과 두개골 각도의 이른바 ‘중요한 차이’를 찾아낸 것이다. 여러 인종의 두개골 각도를 재고, 이를 다시 유인원의 두개골과 비교한 캄페르는 윗입술부터 정수리까지 각도와 두개골의 좌우 비례를 꼼꼼히 따져 100분위 단위로 두개골 각도를 세분화했다.
그는 이어 미학의 창시자 요한 빙켈만이 모범으로 생각한 그리스적인 얼굴을 100점 만점의 이상적인 미(美)로 삼은 뒤, 각 인종이 이상형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따졌다. 그에 따르면 70도 이하였던 흑인은 인간보다 유인원이나 개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반면 유럽인의 두개골은 각도가 97도 이상으로 평가돼 이상적인 모습에 가까운 것으로 자리 잡았다.
캄페르 이후 인류학자들은 소위 ‘두개골 각도’를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여겨 이를 전적으로 수용했다. 빙켈만 등에 의해 미적 기준으로 만들어진 각종 기준은 우수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을 나누는 과학적 징표이자 척도로 활용됐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에 따라 성격이나 운명이 결정된다는 생각은 서구 사회에선 16세기부터 어느 정도 널리 퍼져 있었다. 당시엔 곱슬머리나 매부리코 등은 개인의 운명이나 질병, 파산, 성격 등을 설명한다고 봤다. 그런데 캄페르 이후 생김새가 운명과 성격을 결정한다는 사고는 그 범위가 인종 전체로 확대됐다. 인간의 특질은 외부에서 관찰되는 특성에 의해 판별되게 됐고, 인간의 내면은 외면과 불가분의 관계가 돼버렸다.
캄페르의 뒤를 이어 요한 카스퍼 라바테르가 영국인과 이탈리아인, 프랑스인의 인상학적 특성을 구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민족적 특질을 구분하는 인상 요인을 찾는 게 그의 목표였다. 하지만 그는 독일인의 특징이라 할 만한 것은 이빨과 웃음이고, 프랑스인은 코가 특이하다는 정도의 애매모호한 설명밖에 내놓지 못했다. 라바테르는 “인간의 특질은 자연환경에 의해 기본형이 결정되고, 기본형에서 여러 변종과 다양성이 나온다”고 봤다.
비슷한 시기에 라바테르의 후계자들은 유럽 각지에서 경쟁적으로 나왔다. 대표적 인물이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인 장 밥티스테 포르타였다. 포르타는 인간 얼굴과 동물의 유사성에 집착했다. 포르타는 동물과 비슷하게 생긴 인간은 그 동물의 특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고 봤다. 예를 들어 양이나 황소, 사자와 닮은 사람들은 그 동물들의 성상과 본능도 내면에 같이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는 흑인이 유인원과 유사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는 인종주의자들의 주요 테마로 부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