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개발 사업의 부실로 자금난에 몰린 태영그룹이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전격 신청하면서 계열 방송사 SBS의 경영권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자구 노력의 진정성을 둘러싸고 채권단과 태영 오너 측 간 갈등도 깊어졌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에 태풍과도 같은 위기가 몰려오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연초부터 생깁니다.
여러분이 방학을 유익하게 잘 보내면 다음 학기를 자신감 있게 시작할 수 있듯이 나라 경제와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기가 좋을 때 부실하고 허약한 부분을 정리·수습하고 내실을 다지는 노력을 기울여야 다가올 불황을 이겨낼 힘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금융회사들이 비 올 때(기업이 어려울 때) 우산(대출 등)을 뺏어선 안 된다는 얘기도 있지만, 부실 문제의 일차적 책임은 기업과 가계 쪽에 있지요. 국민경제의 안정을 고려해서라도 ‘밑 빠진 독’ 신세의 기업이나 개인을 계속 지원할 순 없습니다.
태영그룹의 경영난은 최근 1년 반 사이 진행된 전 세계적 고금리 금융긴축이 원인입니다. 국내 부동산 개발 사업에 돈을 대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만 134조 원에 이르고, 이 중 상당액이 채권 회수가 불투명한 부실 대출일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금융시장 불안을 키우게 놔둬선 안 될 겁니다. 과거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어떻게 진행됐고, 이번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 기업 부실은 어떤 치유 과정을 거치는지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타이밍 놓친 조선 구조조정에 20조 허비기업 부실 정리 미루면 나중엔 더 큰 부담
경제위기 발발과 기업 부실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경제위기는 호황 때 방만하게 늘어난 돈이나 헤픈 정부 지출, 부채로 쌓아 올린 경제가 지속되지 못하고 경기하강 충격이 시작될 때 엄습하는데요, 부실기업은 이런 위기를 더 키우는 골칫덩이입니다. 과도한 빚을 끌어 쓰다 부실 덩어리로 전락한 기업의 구조조정을 잘해야 다른 기업으로 신용위기가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과거 경제위기 때 한국 기업의 구조조정은 어땠는지 살펴볼까요?
‘대마불사’ 등 숱한 논란 낳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지경까지 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는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무리한 외부 차입에도 원인이 있었습니다. 기업을 경영할 때 자기 돈(자기자본)과 빌린 돈(타인자본) 간 황금비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제품을 잘 팔고 돈을 잘 벌면 금융회사는 먼저 나서서 돈을 빌려주려 하겠지요. 그런데 이런 기업의 확장세가 이어지지 못하고 부진한 실적을 보이기 시작하면 그제야 기업이 쌓아 올린 빚 규모를 따지기 시작합니다. “물(유동성)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의 말이 딱 맞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제2의 IMF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반도체 등의 중복투자를 막고 핵심 사업 부문을 집중 육성하겠다며 현대·LG·대우·삼성·SK 등 5대 그룹을 모아 이른바 ‘빅딜(big deal)’을 추진했죠. 산업 구조조정의 형식을 빌린 정부 주도의 이런 결정은 일부 기업엔 탄탄한 성장 기반을 마련해줬습니다. 그러나 LG그룹은 반도체 사업에서 아쉬움을 남기며 손을 떼야 했고, 대우는 삼성자동차 인수 실패로 그룹이 해체되는 계기를 맞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이어진 세계적 경기침체는 조선업과 해운업에 일대 위기를 몰고 옵니다. 조선업은 2006~2008년 호황기를 맞았는데요, ‘세계 1위’에 자신만만하던 한국 조선회사들이 이를 구조조정의 좋은 기회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2015년 뒤늦게 조선업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등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맙니다. 당시 대우조선을 포함해 조선업에 공적자금 등 20조 원 넘는 돈이 투입됐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돼버렸어요.
해운업도 비슷했습니다. 2011년부터 세계 해운 물동량이 급감하고 선박은 초과 공급된 상태에서 경영 위기를 맞았죠. 국내 1위, 세계 7위의 국적 선사 한진해운은 결국 법정관리로 가고 파산하고 맙니다. 대우조선은 살려놓고 한진해운은 파산하게 둔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도 많았습니다. 정부는 덩치가 큰 기업은 죽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에 대한 믿음을 민간에서 불식시키려 했겠지만, 한국 해운업의 경쟁력 약화를 불러오고 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