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한때 '인터넷은 쓰레기'라고 혹평한 적이 있다.
1990년대 말 논문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검색하던 그는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 때문에 도저히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1995년 당시 스탠퍼드 대학원생이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무질서하게 리스트를 쏟아내는 당시의 검색엔진에 강한 불만을 가졌다.
결국 자신들의 불만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지금의 세계 최대 검색엔진인 '구글'이다.
페이지와 브린이 처음 구글이란 말을 쓴 것은 1997년이다.
구글은 미국 수학자인 에드워드 캐스너의 조카인 밀튼 시로타가 만든 '구골(googol)'이라는 신조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말이다.
두 사람은 "우리가 개발한 검색엔진으로 인터넷상의 모든 웹페이지를 검색하겠다"며 그 의지를 회사 이름에 담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구골닷컴은 이미 다른 사람이 인터넷 주소로 등록한 상태였기 때문에 페이지와 브린은 울며 겨자먹기로 구글닷컴을 등록했다.
페이지는 부모 모두 컴퓨터 전문가였다.
아버지 칼 페이지는 미시간주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이고 어머니 글로리아도 컴퓨터 교사다.
브린은 모스크바 태생의 유태인으로 5살 때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했다.
브린의 아버지는 수학자로 현재 메릴랜드대학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페이지와 브린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이들은 처음에는 상대에 대해 별 호감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티격태격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브린은 페이지가 검색엔진을 개발하는 과정 중 수학적 난관에 봉착하자 이를 해결해줬다.
결국 일을 함께 하면서 둘은 단짝이 됐다.
이들이 처음부터 회사를 차리려 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검색엔진을 포털 업체에 팔려고 했다.
희망 가격은 16억원.그러나 당시 어떤 포털 업체도 구글을 사려 하지 않았다.
페이지와 브린은 고민 끝에 개인 벤처 투자자들로부터 100만달러를 투자받아 1998년 구글을 창업했다.
구글의 첫 사무실은 페이지의 여자친구 집 차고였다.
구글은 창업 2년 만에 하루 1800만건의 검색을 하는 미국 최대 검색 사이트로 급성장했다.
구글의 현재 가치는 120조원이 넘는다.
구글은 다른 포털과 웹사이트에 검색 엔진을 임대해주는 사업도 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