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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낙태권은 right인가…entitlement인가…

2020.10.15

여성의 낙태권은 right인가…entitlement인가…

고기완 기자2020.10.15읽기 6원문 보기
#권리(right)#entitlement#시민권#인권#동성결혼#복지#의무 이행#권리 혁명

찬반 논쟁 뜨거운 낙태죄

right는 다른 사람 희생 없는

무제한의 권리를 뜻하고

entitlement는 양보 전제

인류가 진보를 거듭하면서

권리는 복잡해지고 세분화

상호 충돌 소지 점점 늘어

낙태권은 권리가 될 수 있을까? 즉 권리로서의 낙태권은 성립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권리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자. 우리가 아는 권리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한국말에는 권리를 두 개념으로 나누는 단어가 없다. 부득이 영어로 구분하자. 영어에는 권리라는 단어로 ‘right’와 ‘entitlement’가 쓰인다. right는 다른 사람의 희생이 없는 무제한의 권리를 뜻하고, entitlement는 남의 희생과 양보를 전제한다. right는 폭넓게 인정되는 반면 entitlement는 right와 달리 제한적으로 보호될 수밖에 없다. 복지가 right가 되면, 지하철 노약자석이 right가 되면 무제한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므로 일반석이 없어져야 하고, 복지 비용을 남들이 무제한적으로 대야 한다.right와 entitlement는 개념상 의무 이행자를 전제로 한다. 누군가의 권리는 누군가의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권리에 응해야 할 의무가 없다면 그것이 right든 entitlement든 잘 보호되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right인 언론, 출판, 결사, 집회, 사상의 자유권은 정부와 권력에 보호 의무를 지운다. 정부와 권력은 이런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 노약자석과 복지 같은 entitlement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권리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의무를 지우고 처벌하기 곤란하다. 노약자석을 비워 줄 의무는 없지만, 어길 경우 사회적 비난을 받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그럼 낙태권은 어떨까? right인가 entitlement인가? 낙태권이 어떤 권리가 되느냐에 따라 낙태를 해줄 의무가 발생한다. 의사들은 낙태를 원하는 사람이 오면 반드시 수술을 해줘야 할까? 의사가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pro-life)이라면 수술을 거부할 수 있을까, 없을까? 여성의 몸속에 든 태아는 무조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의사가 ‘나는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하면? 쉽지 않은 문제다. 낙태권이 entitlement가 된다고 의사들은 무조건 낙태 수술을 해줄까? 의사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가 충돌하기 쉽다. 분열과 갈등 요인이 단번에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다. 내면의 악마와 천사들의 작동우리가 논란이 거센 낙태권에 침묵할 수 없는 것은 인류가 ‘권리 혁명’의 길 위에 있기 때문이다.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권리를 꾸준히 개발(?)해 왔다. 원시적 폭력성이 문명화로 점점 순치되면서, 인간의 삶이 먹고 살 만해지면서, 인간이 법과 제도를 만들고 국가를 세우면서, 이에 따라 인간 내면의 악마성이 억제되는 대신 선한 천사들이 발현되면서, 다양한 권리보호에 정치적·사회적 압력이 가해졌다. 19세기부터 확립되기 시작한 시민권(자유권, 재산권, 인신보호법, 재판을 받을 권리)은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보호됐다. 인종차별을 질타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희생은 시민권 획득으로 승화됐다.투표권을 요구한 여성권은 1913년 영국인 에밀리 데이비슨의 죽음 이후 획득되었다. 산업혁명기에 논란이 된 아동노동은 금지되었으며, 동성애자들은 중세 화형을 피해 인권으로 성적 선택을 보호받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동성결혼이 국가에 따라 인정되고 있다. 인류의 권리 의식은 마침내 동물권을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개를 발로 차는 일은 동물학대죄로 처벌되고, 생물 요리법(어떻게 죽여서 요리하는가)까지 규제되는 중이다. 여성의 낙태권도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런 문명사적 기류에서 이해해야 감을 잡을 수 있다. 원시시대 우리 조상들은 부족 간 전쟁을 통해 학살과 아동 및 여성 납치를 일삼았다. 그 당시 낙태권은 아마도 논의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권리의식조차 없었을 것은 뻔하다. 우리 사회에서 낙태권은 동성결혼 인정만큼이나 첨예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이슈가 됐다. 더 이상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정보 교류와 교육의 힘논란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정보 교류와 교육이다. 단칼에 해결하기 어려운 권리 문제는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자유권, 노예투표권, 여성 투표권, 동성애권, 동성결혼권 등 권리 보호 면에서 앞서가는 국가들과의 정보 교류로 갈등 수위를 낮출 수 있다. 우리가 이런 정보에 자주 노출되면 권리 규범이 점차 형성된다. 나라마다 종교마다 보호하는 권리가 다르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합의가 필요하다. 교육과 민간단체들의 합리적인 운동은 합의를 도출하는 좋은 도구다. 앞으로 권리는 더 복잡해지고 세분화될 전망이다.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 교수는 그의 저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20세기 들어 지구촌 경제가 발전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늘어나면서 권리 혁명을 향한 진보가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낙태권은 권리혁명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이슈라는 점은 분명하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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