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포인트
칸트와 하딘은 이민과 난민 수용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칸트는 ”세계평화를 위해서“를, 하딘은 ”구명선 두 척 중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서’를 주장한다. 토론해보자.
미토콘드리아…“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왔다”
인류의 역사는 이민(移民)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세포 속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토콘드리아는 “그렇다”고 답해준다. 닉 레인이 쓴 ‘미토콘드리아’ 서문에 보면 우리는 17만 년 전 ‘아프리카 이브(African Eve)’라는 할머니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모계(母系)로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를 역추적해보면 우리는 모두 이 할머니에 가닿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먼길을 떠나온 이민자들의 후예들이다.
인류학적 이동을 끝낸 인간들은 한 곳에 머물기 시작했다. 정주(定住)형 문명의 출현이다. 정주형 문명인들은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 민족, 집단, 가족, 개인 단위로 이동했다. 문명 초기에 기름진 ’초승달 지대‘는 대표적인 이민의 땅이었다. ’총·균·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환경적 차이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고대 게르만인의 대규모 국제 이동, 노르만인과 핀족의 대이동 역시 이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민족들의 압박이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인구 증가를 해소하기 위해, 경작지 부족을 덜기 위해, 마치 아프리카 누떼처럼 이동해야 했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유대인 이집트 탈출은 종교적 이유가 작용한 거대한 이민 행렬이었다. 물론 한반도에서도 대이동은 나타났다. 신라시대 벌휴왕 때 일본에 가뭄과 기근이 들어 일본인들이 대거 한반도로 건너왔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 멸망 이후 백제 기술자와 귀족들이 일본으로 넘어간 것도 이민에 속한다.
신대륙 발견과 노예 이동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면 이민의 현대적 형태가 나타난다. 바로 유럽인의 아메리카 신대륙 이민이다. 18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모국을 떠난 유럽 이민자 수는 약 8000만명에 달한다. 이중 4500여만명이 미국과 캐나다로, 2000만명이 중남미로, 1700여만명이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로 옮겨갔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잘 살아보겠다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많이 작용했고, 정치적·종교적 이유도 많았다.
미국은 그야말로 ’이민자의 나라‘로 불린다. 미국은 원래 인디안 원주민이 살던 땅이었다. 16세기 콜럼버스가 인도(印度)와 거래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역항로를 찾다가 발견한 곳이 미국이다. 세월이 흐른 뒤 인디언들은 백인들로 대체됐다.
지금도 인디언들은 “우리 조상들의 땅이다. 이민자들은 나가라“고 한다. 재미있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금은 미국땅인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지역은 멕시코 땅이었다. 전쟁으로 강제병합한 미국 정부는 멕시코인들을 미국인으로 인정해주는 선에서 분쟁을 마무리지었지만, 미국내 멕시코인들도 인디언처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한다. 인디언들이 ”멕시코 너도 나가라“라고 하지 않을까? 이런 미국이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후 이민을 거부하는 나라로 변하고 있다.
미국 땅에는 슬픈 이민의 역사가 있다. 아일랜드인들이 겪었던 수모보다 더 심한 강제이민의 역사다. 바로 흑인 노예 이동이다. 16~19세기 대서양 노예무역을 통해 아프리카로 실려온 흑인은 1200여만명에 달한다. 이보다 역사가 오래된 ’아랍 노예무역‘으로 끌려온 흑인도 1100만~1800만명 정도 된다.
지구촌은 이민과 난민으로 ‘떠들썩’
이민과 비슷한 난민도 있다. 현대의 이민은 자발적인 이동이고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조건을 충족해야 성립되는 반면, 난민은 여러가지 박해를 피해 자기 나라를 떠나 피난처를 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최근 지구촌은 시리아 난민사태로 홍역을 겪고 있다. 내전과 독재, 종교 탄압을 피해 시리아인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지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 등 이슬람 난민과 이민을 거부하기에 이르렀고, 영국도 유럽연합(EU)이 할당해주는 난민에 손사레를 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