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가치(환율)는 양면성이 있다. 우리나라 원화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가치 하락)하면 수출기업에는 도움이 되지만 수입가격이 올라 물가가 불안해진다. 또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쇼핑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지지만 해외로 나가는 한국 유학생이나 관광객은 비용 부담이 커진다. 금융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외환당국이 환율을 임의로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느 방향으로 조정할지의 선택 역시 고민스러운 이유다. 원유나 금 등 주로 달러로 결제되는 상품은 달러 가치가 떨어질수록 가격이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달러가 넘쳐나면서 ‘글로벌 인플레’ 우려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환율 오르면 통화가치 떨어져
신문기사를 읽다보면 통화가치와 환율이 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와 환율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돈 원화의 가치를 평가할 때는 달러나 유로, 엔, 위안이 기준통화가 된다. 따라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00원원 식으로 표시된다. 환율은 서로 다른 통화 간의 교환비율이다. 즉 원·달러 환율 1100원은 1달러를 우리나라 돈과 바꾸려면 1100원을 줘야 한다는 의미다. 1100원을 주고 1달러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강해지면 1000원만 줘도 1달러와 교환할 수 있다. 이 경우 환율은 1100원으로 떨어지지만 원화 가치는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입장이다. 미국 측에선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달러 가치도 그만큼 약해졌다는 의미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공동통화인 유로와 달러의 환율은 유로가 기준이다. 따라서 유로당 1.3달러 식으로 환율이 표시된다. 이 경우 환율이 상승하면 유로 가치가 강하고, 환율이 하락하면 달러가 강해진다는 의미다.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심해지면 달러·유로 환율이 낮아진 것도 이런 이유다. 통화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력, 통화수급, 지정학적 리스크 을 반영해 결정된다.
#수출과 물가의 딜레마 외국과의 교역, 여행, 자본이동 등에는 환율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통화가치는 바꿔 말하면 구매력이다. 같은 단위의 통화를 가지고 얼마만큼 물건을 살 수 있느냐가 구매력이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이면 같은 단위의 달러가 원화보다 구매력이 1100배 높다는 뜻이다. 따라서 환율이 변한다는 것은 통화의 구매력이 변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제무역의 60% 정도는 달러로 결제된다. 유로, 엔도 대표적 결제통화다. 중국은 자국 통화인 위안의 위상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위상이 다소 약해졌다해도 세계의 기축통화는 누가 뭐래도 달러다. 달러의 가치 변화가 우리나라 수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원·달러 환율은 우리나라 수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200원이라면 한국 수출업체는 1달러어치를 수출해 1200원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그런데 환율이 1000원으로 떨어지면(원화 강세) 같은 1달러어치를 수출해도 매출이 1000원으로 줄어든다. 당연히 수출의 채산성이 떨어지고 수출경쟁력도 악화된다. 마진이 줄어들면서 할인판매 등 마케팅에서도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반면 1달러어치 상품을 수입하기 위해 1200원이 필요했던 수입업체는 수입비용이 1000원으로 줄어들어 수입채산성이 좋아진다. 따라서 환율 하락은 물가안정엔 도움이 된다. 이따금 적정 환율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환율이 수출과 물가에 반대의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원화 강세는 유학생의 학비나 외국으로 나가는 한국 관광객들의 경비 부담을 줄여준다. 같은 액수의 달러를 사는 데 필요한 원화가 적게 소요되기 때문이다. 한때 일본의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우리나라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 이를 잘 설명한다. 달러표시 자산이 많은 국가는 달러 가치 하락으로 국부(國富)가 줄어들 수도 있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저절로 많아진다. 원화를 달러로 환산한 액수가 커지기 때문이다.
#인플레 부추기는 달러 약세
달러 약세는 글로벌 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달러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상품가격이 상승 압력을 받는다. 예를 들어 국제원유의 수급에 변화가 없어도 달러 가치가 약해지면 유가가 상승한다. 산유국의 입장에선 달러 약세로 줄어든 구매력을 가격 인상으로 보충하려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을 ‘글로벌 인플레의 주범’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약달러 추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경기가 둔화되면서도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