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시대의 모순을 풍자로 고발하다
채만식은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고 1914년 임피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18년 경성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 1922년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 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귀국했다가 다시 돌아가지 않아 퇴학 처분되었다. 1924년 경기도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취직하고, 조선문단에 '세 길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1925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가 이듬해에 그만두고 고향에서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 이론에 심취하며 문학 수업에 전념했다. 1936년 개성으로 옮겨가 본격적인 전업 작가 생활에 들어간 뒤 '탁류' '태평천하' 등을 써내면서 당대 문단의 중진 작가로 인정받았다. 일제 말기에 귀경과 낙향을 반복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집필 활동에 전념하여 주옥같은 해방기의 명편들을 남겼다. 1950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문읽기 아무려나 이래서 조손 간에 계집애 하나를 가지고 동락을 하니 노소동락(老少同樂)일시 분명하고, 겸하여 규모 집안다운 계집 소비 절약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소비 절약은 좋을지 어떨지 몰라도, 안에서는 여자의 인구가 남아돌아가고(그래도 한숨과 불평인데) 밖에서는 계집이 모자라서 소비 절약을 하고(그래 칠십 노옹이 예순다섯 살로 나이를 야바위 치고, 열다섯 살 먹은 애가 강짜도 하려고 하고) 아무래도 시체의 용어를 빌려오면, 통제가 서지를 않아 물자 배급에 체화(滯貨)와 품부족이라는 슬픈 정상을 나타낸 게 아니랄 수 없겠습니다.
▶해설=채만식은 식민지 시대의 모순을 풍자적 기법을 활용하여 예리하게 비판한 당대 최고의 소설가 중 한명이었다. '레디메이드 인생'과 더불어 그의 대표작인 '태평천하'가 1937년 일제강점이 최절정에 달한 시기에 출간된 것을 고려할 때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풍자' 기법은 단순한 문학적 기법이 아니라 역사적 배경이 강요한 유일한 문학의 탈출구였다. 사실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풍자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굳이 채만식을 풍자소설가로 분류하는 것은 '태평천하'가 그의 작품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는 단순히 당시의 지배자인 '일본'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피지배국인 한국의 모순을 동시에 비판한다. 즉, 당시 한국 사회의 이중적인 모순 구조에 냉소를 퍼붓고 있다. 그가 중점적으로 비판하고자 한 것은 '식민지 치하에서의 자본주의적 모순'으로서, 특히 비정상적인 자본축적의 양상이었다.
자본주의가 자생적으로 싹트기도 전에 일본에 의한 타율적인 자본주의의 이식은 한국 사회를 왜곡시키기 시작했다. 그러한 잘못된 사회운영원리의 이식은 경제적 현상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사회의 문화, 풍속, 가족관계까지 송두리째 파괴해갔다.
소설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주인공 윤직원(윤용규)은 자신의 손녀뻘 되는 소녀를 돈으로 매수하여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더 가관인 것은 윤직원이 추근대는 소녀를 윤직원의 손자 역시 흠모한다는 것이다. 위의 원문에서 이 같은 반(反)윤리적 행위가 '경제원리'에 의해 풍자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전통적 규범이 파괴되는 현상의 원인을 단순히 풍속의 타락으로만 파악한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자본주의적 관계에 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원문읽기 "세상이 다 개명(開明)을 해서 좋기는 좋아도, 그 놈 개명이 지나치니까는 되레 나쁘다. 무언고 하니, 그 소위 농지령이야, 소작조정령이야 하는, 천하에 긴찮은 법이 마련되어 가지고서, 소작인놈들이 건방지게 굴게 하기, 그래 흉년이 들든지 하면 도조(賭租)를 감해 내라 어째라 하기, 도조를 올리지 못하게 하기, 소작을 떼어 옮기지 못하게 하기…."
이래서 모두가 성가시고 뇌꼴스러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 땅 가지고 내 맘대로 도조를 받고, 내 맘대로 소작을 옮기고 하는데, 어째서 도며 군이며 경찰이 간섭을 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