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과연 인간적인가
현대 구조주의 사상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레비 스트로스는 기존의 인류학 연구방법론은 물론 인문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전반에 인식론적 전환을 가져온 독특한 사유 체계를 창시한 대학자이다. 현대에 씌어진 가장 탁월한 기행 문학으로 전 세계의 광범위한 독자층에게 일대 충격을 준 <슬픈 열대>는 레비 스트로스가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조사한 네 원주민 부족에 관한 민족지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민족지의 차원을 넘어 저자 자신의 사상적 편력과 청년기의 체험,인류학을 자신의 학문 영역으로 설정하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을 지적,자서전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현대의 탁월한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 책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인들의 사회에 대해 동경과 연민의 정을 느끼는 동시에 비인간적인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 문명에 대한 강한 분노와 깊은 우수를 표명하고 있다.
◆원문 읽기 마르크스가 내게 가르쳐 주었던 것은 물리학이 감각의 여건에서부터 출발하여 체계를 세운 것이 아닌 것처럼 사회과학도 사건들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회과학의 목적은 하나의 모델을 설정하여 그것의 특성과 그것이 실험실에서의 테스트에 반응하는 갖가지 방식을 검토한 후 이어서 그 관찰 결과를 경험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석-예견했던 바와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에 적용하는 것이다.
▶해설 레비 스트로스는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마르크스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청년 시절 스스로를 좌파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으나 자신의 사상적 지향점이 마르크스와 다르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일정 부분만을 자신의 독특한 구조주의 철학으로 수용한다. 레비 스트로스가 마르크스에게서 받은 영향은 사회를 분석할 때 경험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은 피상적 차원의 해석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체계적인 '모델'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분석하는 것이 복잡한 사회를 탐구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인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에게 최선의 모델이란 다름 아닌 '구조'였다.
◆원문 읽기 여기서도(캘커타) 역시 상대방이 틀림없이 갖추고 있다고 되도록이면 내가 인정하고 싶은 그 인간적 자질을, 상대방의 행동거지 때문에 부득불 부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교상의 규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관장하는 모든 원초적 상황이 무너져 버리고,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방법도 없다. 왜냐하면 이들 불행한 자들을 평등하게 대해 주고 싶어도 그들은 이 부정에 대해 항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등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오히려 당신이 오만한 태도로 자기들을 짓밟아 주기를 애원하거나 간청하고 있다. 당신과 그들을 갈라놓고 있는 거리를 확대함으로써 한줌의 음식을 기대하는 것이고, 그 음식도 당신과 그들의 관계가 긴장되면 그만큼 더 영양가가 높은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이 나의 신분을 높이면 높일수록 그들이 요구하는 별것 아닌 것이 대단한 것이 될 것이라고 그들은 기대한다.
▶해설 레비 스트로스는 인도 여행 중에 자신에게 굽신거리는 하층민들을 보면서 깊은 우수를 표한다. 사회적 불평등 구조에 의해서 그들은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인격조차 상실하였고, 선량한 누군가가 평등한 관계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부정한다. 그들이 처해 있는 불평등한 상황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주체로서의 인간과는 거리가 먼 '노예'에 불과했다. 레비 스트로스가 여행 중에 만난 하층민들은 자신을 노예로 여겨 주기를 바라는데, 그래야지만이 값싼 동정을 요구하여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생계 유지를 위해서 구걸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선 평등한 인간 관계는 오히려 동정받는 데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하층민들은 스스로를 격하시키면서 생존을 연명해 나간다.
◆원문 읽기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위선적 억지가 아니고서는 인간이 자기의 생활 조건과 무관하게 자기의 신조를 선택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치 조직이 사회의 생존 형태를 결정하기는커녕 생존 형태가 그 자체의 표현인 이데올로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들 기호(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지적하는 대상체가 현존하는 경우에만 언어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 현재의 서양과 동양 간의 오해는 우선 의미론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동양에서 우리(서양인)가 선전하는 개념의 형식은 그곳에서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의미가 다른 것이다. 반면 만의 하나 여건이 전혀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도저히 우리가 견뎌낼 수 없다고 판단하는 범위 내의 변화인지 아닌지는 이런 사태의 희생자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