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방랑이 만들어낸 조선의 풍속도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살만한 터를 선택하기 위한 책)를 읽다보면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이고 다른 한 사람은 보들레르이다. 이중환 김용택 보들레르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우리의 답답하고 팍팍한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인상 깊게 풀어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팍팍한 삶 앞에서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저무는 강변으로 가 이 세상을 실어오고 실어가는 강물에 자신의 마음 한 끝을 적셔 풀어 보내며' 삶을 위로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광막한 비마저 자신을 꽁꽁 가두는 감옥의 쇠격자'로 생각했던 보들레르는 '음울'이라는 시에 정신적 우울을 담아 자신을 잠시 동안 해방시켰다.
이중환은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젊은 나이에 과거에 오르고 문학과 재략(才略)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불행히 먼 지역으로 귀양 가게 되고 택리지를 저술하기까지는 한(恨) 많은 삶을 살았다. 거처할 집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되어 매일매일 어떻게 지낼 수 있었을까? 산과 물, 토지, 명승지, 경치 좋은 곳, 피난처 등등 30여년간 방랑길에서 온갖 것과 만나 꽉 닫힌 마음을 트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지 않았을까? 그가 속했던 삶의 벽장 안에서 숨죽이며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슬픔을 흘려보내고 끝없는 방랑이 만들어낸 이야기 택리지를 읽어보자.
1. 사민총론(四民總論)
◆ 원문 읽기
옛날에는 사대부가 따로 없고 모두 민(民)이었다. 그런데 민은 네 가지로 분류된다. 사(士)로서 어질고 덕(德)이 있으면 임금이 벼슬을 주었고, 벼슬을 못한 자는 농·공·상이 되었다. 옛날 순임금은 처음 역산(歷山)에서 밭 갈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구웠으며, 뇌택(雷澤)에서 고기잡이를 하였다. 밭갈이한 것은 농부의 일이며, 질그릇 구운 것은 공인(工人)의 일이며, 고기잡이한 것은 상인(商人)의 일이다. 그러므로 임금 밑에서 벼슬하지 않으면 농·공·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중략)
후세에 와서 인품이 옛날보다 못하여 기품에 어짐과 어리석음이 있고, 술업(術業)에도 능통하고 막힘이 있다. 그리하여 사대부는 농·공·상의 일을 할 수 있어도 농·공·상을 본업으로 하던 자는 사대부의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득이 사대부를 중하게 여기게 되었는데, 이것이 후세의 자연스러운 추세이다.(중략)
사대부는 살만한 곳을 만든다. 그러나 시세(時勢)에 이로움과 불리함이 있고, 지역에 좋고 나쁨이 있으며, 인사(人事)에도 벼슬길에 나아감과 물러나는 시기의 다름이 있는 것이다
▶해설=실학의 대학자 이익의 재종손이었던 이중환은 임금들의 표본이었던 순임금 역시 밭 갈고 질그릇 굽고 고기잡이하였으니 사대부란 따로 없으며, 모두 한 백성으로 되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유학자들이 꿈꾸고 기억하는 세상은 점점 사라지고 한 백성이었던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생기게 되어 네 종류의 백성으로 나뉘게 된다. 따라서 임금이 벼슬을 주어 살아가는 사대부가 생겨나는 것도 세월의 자연스러운 추세이다. 천하에 좋은 이름이 사대부이니,사대부는 성인의 법을 준수하여 덕을 닦기 위해 자신이 거처할 곳을 만들어야 한다.
2. 팔도총론(八道總論)
◆ 원문 읽기 강원도(江原道)
강원도는 함경도와 경상도 사이에 있다.서북쪽으로 황해도 곡산·토산 등의 고을과 이웃하였고,서남쪽으로는 경기도·충청도와 서로 맞닿아 있다. 철령에서 남쪽으로 태백산까지는 산등성이 동쪽에는 아홉 고을이 있다. 북쪽으로 함경도 안변과 경계가 닿은 흡곡과 통천, 고성, 간성, 양양과 옛 예맥의 도읍이었던 강릉과 삼척, 울진, 그리고 남쪽으로 경상도 영해부와 경계가 맞닿은 평해가 그곳이다.(중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