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밥집이 있는 골목
고두현의 아침 시편

정든 밥집이 있는 골목

고두현 기자2025.08.07읽기 6원문 보기
#소상공인#자영업#골목상권#생활경제#양극화#빈곤#일상의 불평등#공동체 붕괴

Getty Images Bank밥집 골목이현승자주 가던 밥집이 하나 없어질 때그것은 익숙한 표정 하나를 잃어버리는 일이고가령 입맛을 다시는 것도 거기에 포함되겠지만몸의 분별력이란단순한 반복 속에서 예리해지는 것인데혀의 경우도 그렇다바람은 바깥양반이 피웠는데소태 같은 나물무침을 손님이 받아내야 하는 그런어떤 사람들이든 밥집이 있는 골목을 지날 땐금세 타인의 허기도 내 것이 되고이런 이상한 가족을 식구라고도 한다골목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표정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그것이 배고픔의 표정이다정든 밥집이 있는 골목은 초입에만 들어서도거친 가슴을 다독이는 힘이 있다자주 가던 밥집이 하나 없어지는 것만으로도우리는 결딴난 연애보다 참혹한 표정이 된다쫓을 대상은 없고 그저 쫓기는 자의 심정으로“일상이 시고, 시의 재료이고, 삶 자체죠.

제 시가 구체적인 사건과 경험에서 나오다 보니 시를 쉽게 쓰기가 힘들어요. 한때는 좋은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었잖아요?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고 쓰던 시를 요즘은 저를 바꾸려고 써요. 제 시로 일상의 혁명 정도는 이룰 수 있겠지요. ”이현승 시인에게 시는 ‘삶의 질료’이자 ‘일상의 혁명’을 꿈꾸는 씨앗입니다. 생활 속의 사건들은 모두 그에게로 와서 시가 되지요. 그는 이렇게 복잡다단한 현실의 단층을 깊이 들여다보고 민감하게 조응하면서 그 이면의 풍경까지 하나하나 그려냅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친애하는 사물들』에 나오는 시 ‘밥집 골목’에는 다섯 개의 ‘표정’이 겹쳐 있습니다.

“자주 가던 밥집이 하나 없어질 때/ 그것은 익숙한 표정 하나를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했으니, 그에게 밥집은 “익숙한 표정”입니다. 그 집이 있는 골목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표정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 같습니다. 시인은 이것을 “배고픔의 표정”이라고 말하지요. 그가 “자주 가던 밥집이 하나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결딴난 연애보다 참혹한 표정이 된다”고 고백할 때, 그 골목은 “쫓을 대상은 없고 그저 쫓기는 자”의 표정이 됩니다. 일상 속의 두갈래 길이 만나는 골목“두 개의 얼굴”을 가진 골목은 또 다른 풍경에서 다시 한번 합쳐집니다.

밥집이 있는 그곳을 지날 때 “타인의 허기도 내 것”이 되어 함께 입맛을 다시게 하는 “식구”라는 이름이 그것이지요. “초입에만 들어서도/ 거친 가슴을 다독이는 힘”이 느껴지는 곳, 그 생활의 한 공간이 곧 밥집 골목이라는 시의 현장입니다. 이 골목은 일상 속의 두 갈래 길이 하나로 만나는 곳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그 길에서 소멸과 결핍, 먹는 일과 사는 일, 쫓는 일과 쫓기는 일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을 발견합니다. 배고픔이란 결국 “타인의 허기”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식구”의 “혀” 같은 게 아니겠는지요. 그는 언젠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는 것이 시인의 상상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집에 실린 ‘다정도 병인 양’이라는 시에서 “삶은 늘 위로인지 경고인지 모를 손을 내민다”, “왼손등에 난 상처가/ 오른손의 존재를 일깨운다”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합니다. 마치 “왼손에게 오른손이 필요한 것처럼/ 오른손에게 왼손이 필요한 것처럼” 그는 “엎드린 등을 쓸어줄 어둠이 필요하다”고 얘기하지요. 그의 이런 심성은 세 번째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에 나오는 표제시의 “한날한시에 한 친구가 결혼을 하고/ 다른 친구의 혈육이 돌아가셨다면,/ 나는 슬픔의 손을 먼저 잡고 나중/ 사과의 말로 축하를 전하는 입이 될 것”이라는 고백과 맞닿아 있습니다.

시가 세상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는 “죄 안 지은 자들이 더 많이 회개하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하고/ 상처 많은 사람들이 남의 고통에 더 아파”(‘일생일대의 상상’)하는 부조리한 세상과 “아픈 사람을 빨리 알아보는 건 아픈 사람”이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도 잘한다”(‘오줌의 색깔’)는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그가 ‘천국의 아이들 2’라는 시에서 “자기가 제일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지옥일 테지”라거나 “하긴 아픈 사람만 봐도 같이 아픈 곳이 천국일 테지”라고 말하는 것 또한 ‘아픔’과 ‘위로’라는 인생의 양면을 동시에 볼 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생활의 한복판에서 그는 자신의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질료’이자 ‘일상의 혁명’인 희망을 품고 날마다 새로운 시를 씁니다. “상처는 상처로만 열린다. / 잔뜩 풀어 헤쳐 논 이 상처들은 다 뭔가./ 요즘은 아무도 시를 읽으면서 울지 않고 격앙되지도 않는데/ 아무도 안 보는 시를 명을 줄여가면서 쓰고,/ 조금 웃고, 조금 끄덕이고, 들렸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뚫어지게 보고 있는 사람은 역시 쓰는 사람이다.

” (‘천국의 아이들 2’ 부분)√ 음미해보세요 시인“죄 안 지은 자들이 더 많이 회개하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하고/ 상처 많은 사람들이 남의 고통에 더 아파”(‘일생일대의 상상’)하는 부조리한 세상과 “아픈 사람을 빨리 알아보는 건 아픈 사람”이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도 잘한다”(‘오줌의 색깔’)는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그가 ‘천국의 아이들 2’라는 시에서 “자기가 제일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지옥일 테지”라거나 “하긴 아픈 사람만 봐도 같이 아픈 곳이 천국일 테지”라고 말하는 것 또한 ‘아픔’과 ‘위로’라는 인생의 양면을 동시에 볼 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인문 논술은 인문사회계열과 경제경영계열로 구분해 출제하죠
2019학년도 대입 전략

인문 논술은 인문사회계열과 경제경영계열로 구분해 출제하죠

서강대 인문 논술은 인문사회계열과 경제경영계열로 구분되며, 최저임금제의 영향을 분석하는 문제에서는 제시문을 통해 최저임금제가 실업 증가와 중소기업 피해를 야기한다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공급 감소가 장기적으로 균형임금을 상승시켜 실업을 완화할 수 있다는 수요-공급 곡선 분석이 핵심이다.

2018.11.08

2635세대 뜬다

평소엔 짠돌이...명품 살땐 '화끈'

2635세대는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했으나 외환위기 등 현실적 어려움을 겪으며,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명품에는 과감히 소비하고 덜 중요한 곳에는 철저히 절약하는 '가치소비' 패턴을 보인다. 이러한 양극화된 소비행태로 인해 평균적인 가격대의 상품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으며, 기업들은 명품 또는 저가 고품질 제품 중 하나에 집중하는 명확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2006.01.03

기술진화는 옛 일자리 없애지만 새 일자리 더 많이 만들죠
4차 산업혁명 이야기

기술진화는 옛 일자리 없애지만 새 일자리 더 많이 만들죠

기술진보는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지만 생산성 증가로 인한 새로운 부의 창출과 소비수요 증가를 통해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다만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빠르거나 새 일자리 창출이 지연되면 실업과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으므로, 교육 강화,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양극화 해소 방안 등 기술 선순환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2018.05.31

딸을 판 백 원으로 밀가루빵 사서 이별하는 딸 입에 넣어주는 여인
Book & Movie

딸을 판 백 원으로 밀가루빵 사서 이별하는 딸 입에 넣어주는 여인

탈북 시인 장진성의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굶어 죽은 300만 명의 죽음을 증언하는 작품으로, 어린 딸을 팔아 밀가루빵을 사주는 어머니의 모성애부터 지도자의 사치로 인한 백성의 아사까지 북한의 비극적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그의 시는 북한 인권 회복이 먼 미래가 아닌 당장의 문제임을 명확히 하며, 세습 독재 체제의 위선과 폭력성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2015.06.18

2006 주목! 이 사람

'아베 신조, 日차기총리 1순위에 꼽혀' 등

2006년 국제무대에 떠오르는 지도자들로 일본의 아베 신조 관방장관,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각각 자국의 정치·경제적 변화를 주도하면서 국제질서 재편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아베의 극우 성향, 중국의 양극화 문제, 메르켈의 경제 개혁, 캐머런의 현대적 보수주의, 차베스의 반미 좌파 연대 등이 향후 국제 관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2006.01.03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