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울수 있는 중소기업에 가자"
1976년 2학기가 막 시작된 9월께.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반의 한 대학생이 직장 선택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거의 월급도 많고 남들로부터 부러움도 사는 대기업 취업을 희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학생의 생각은 달랐다.
'언젠가 내 사업,그것도 제조업을 해 봐야겠다.
그러려면 직장 생활 초창기에 일을 빨리 많이 배워야 하는데,조직이 잘 갖춰진 대기업은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차라리 유망한 중소기업에 가야겠다.'이 학생은 고민 끝에 당시까지만 해도 중소기업이었던 두산기계를 첫 직장으로 택해 그해 11월 입사했다.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시절의 얘기다.
그는 지금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돼 있지만,사회생활은 이렇게 중소기업부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는 잘 짜여진 곳보다는 새로 확장하고 있는 기업이라야 발전 가능성이 높고,그곳에서라야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것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그가 첫 직장 두산기계를 1년 만에 그만둔 것도 같은 이유다.
두산기계가 외자 도입 후 갑자기 커지자 그의 업무가 너무 좁은 분야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남 사장은 두 번째로 대중공업이란 가스실린더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곳의 오너 사장이 동생의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회사를 나왔다.
세 번째는 우정해운이라는 해운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해운회사 역시 '제조업 체질'인 나와 맞지 않아 매일 땡땡이만 치다 그만뒀다."
중소기업을 선호했던 그가 결국 대기업인 대우그룹에 입사한 데는 그의 큰 딸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실직자가 된 바로 그날,첫 애가 한 달 정도 조산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애를 낳아놓고 실직을 하니 마음이 조급해지더라고요.
때마침 대우와 삼성이 신입사원을 뽑고 있어 원서를 냈죠."
하지만 삼성보다 대우를 선택한 것은 '발전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에 가고 싶다'는 그의 잠재의식이 마지막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다.
"당시만 해도 삼성보다는 대우가 신생기업이라 발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했죠.대우의 여러 계열사 중 대우조선에 온 것도 마찬가지예요.
당시 대우에서 가장 별 볼일 없는 데가 대우조선이었거든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대기업인 대우조선해양에서 그가 맡은 업무는 자금.그는 작년 대우조선해양의 사장으로 진급하기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자금업무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