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20일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49)은 어둠이 깔린 서울 테헤란로를 걷고 있었다.
후텁지근한 공기에 한 줄기 소나기가 세차게 뿌리고 지나간 뒤였다.
강남 거리는 이제 막 불을 밝히고 있었다.
후두둑 후두둑…. 가끔 비 긋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산도 쓰지 않았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 기분 좋은 밤이 오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여정을 돌아보며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과연 꿈을 이뤘나.
여기가 그토록 도달하고자 하던 곳이었던가?"
김 사장은 그날 오전 7월1일자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BMW의 본사 임원(Senior Executive)으로 선임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바이에른의 자동차공장(Bayerische Motoren AG)"이라는 뜻을 가진 BMW는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브랜드.그 BMW가 서울대도 도쿄대도 아닌 상업고등학교 출신을 본사 임원으로 등재한 것.더구나 BMW는 해외 근무 경험이 전혀 없는 그의 경력을 감안해 "두 지역(국가) 이상에서 확실한 성과를 거두어야만 된다"는 내부 규정까지 고쳐가며 그를 임원으로 발탁했다.
김 사장은 덕수상고와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다.
그나마 방통대는 고교 줄업(1975년) 후 22년 만에 마친 것이었다.
◆"아니,상고 출신이라고 차별하는 것입니까?" 김 사장은 성동중학교를 다녔다.
학급 반장을 도맡을 정도로 성실하고 총명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부친이 교통사고를 당해 생활능력을 상실하는 바람에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3남2녀 중 장남인 그는 고교 1학년 때부터 중학생을 지도하며 동생들 뒷바라지와 집안살림을 도왔다.
고3 때인 1974년 여름 삼보증권(현 대우증권)에 취직이 돼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재무와 경리를 담당했다.
그는 매사에 당당했다.
사무실에 사장이 나타나면 모든 직원이 일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총무부장을 찾아가 개선책을 마련해 달라고 건의했다.
건방지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지만 이 일은 직원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됐다.
비슷한 일화는 또 있다.
1976년엔 친하게 지내던 선린상고 출신의 선배 한 사람이 승진인사에서 누락되는 일이 벌어졌다.
평소 근무태도나 전문지식,인간관계로 봤을 때 반드시 승진해야 할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