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대우신화 김우중 회장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15) 대우신화 김우중 회장

생글생글2017.05.11읽기 5원문 보기
#대우그룹#김우중#외환위기#수출 기업#부실기업 회생#호랑이 등에 올라타기#구조조정#환율

김정호 교수의 대한민국 기업가 이야기

1960년대 해외에서 옷감 팔기로 사업 시작

부실기업 사들여 회생시켜 대우그룹 일궈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

서울역 정문을 나서면 붉은색 정사각형 건물이 시각을 압도한다. 서울스퀘어다. 지금은 싱가포르 알파인베스트먼트의 소유이지만 1999년까지 대우그룹 본사 건물이었다. 재계 2위까지 올랐던 대단한 기업이었지만 갑자기 무너졌다. 대우그룹을 세우고 키워냈던 김우중. 그의 사업 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해외 지향성과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이것이 다른 누구와도 다른 김우중 식 사업방식의 핵심이었다.

■ 기억해 주세요^^재계 순위 2위였던 대우그룹은 20세기 말에 불어닥친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해체됐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던 김우중 회장의 대우신화는 마치 신기루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싱가포르 다니며 옷장사···판매 ‘귀재’

1967년 김우중은 대우실업을 세우고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지에 ‘트리코트’라는 옷감을 팔러다녔다. 낯선 외국의 바이어(구매자)들을 찾아다니며 한국산 옷감을 잘도 팔았다. 그는 판매의 귀재였다. 주문량이 늘어나자 공장들을 사들여서 직접 제조에 나섰다. 내수판매는 하지 않았다. 국내 기존 중소기업들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반에 이르러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수출 기업이 많았지만 대부분 주력은 내수시장이었다. 국내 판매에서 성공한 뒤에 해외시장으로 나아갔다. 김우중은 독특하게도 해외 수출로 사업을 시작했고 그것으로 성공했다.1970년대 중반 김우중은 건설업으로 진출했다. 그 무렵 정주영의 현대건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구 최대의 단일공사라는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자극받은 다른 재벌기업도 앞다퉈 중동건설 시장에 뛰어들었다. 김우중은 그들이 안 가는 다른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그가 택한 곳은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북한 대사관만 있을 뿐 한국과는 미수교국이었다.감원보다 생산 늘려 부실기업 살려

김우중은 탄자니아의 누메이리 대통령이 아프리카 정상회담을 위해 영빈관을 짓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못하는 처지였다. 김우중은 누메이리를 만나 영빈관을 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공사대금은 돈 대신 탄자니아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면화로 달라고 했다. 뭐든지 팔 자신감이 있는 김우중이었다. 면화를 팔면 그게 바로 돈이었다. 누메이리는 당연히 수락했고 영빈관은 지어졌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탄자니아와 외교관계도 맺게 됐다.미수교국과의 비즈니스는 리비아로도 이어졌다. 이 나라에는 도로, 주택, 비행장을 지어주고 석유를 받았다. 김우중의 대우는 이렇게 남들이 가지 않는 나라에서 시장을 넓혀갔다.김우중의 또 다른 전략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였다. 매우 빠르지만 위험한 전략을 뜻한다. 부실기업 회생전략이 그랬다. 부실기업을 맡은 사람은 대개 인력과 사업을 줄인다. 김우중은 오히려 생산을 늘렸다. 그렇게 해서 원가를 낮추고 판매를 늘려 기업을 회생시켰다. 대우중공업과 대우조선을 만드는 과정이 그랬다. 1970년대 말 우여곡절 끝에 거의 망한 한국기계(대우중공업)와 옥포조선소(대우조선)를 떠맡았다. 그는 사업을 줄이는 대신 배를 빨리 건조하고 대우중공업의 디젤엔진을 거기에 얹어서 팔았다. 두 회사 다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같은 대우그룹의 주력기업들이 그렇게 생겨났다.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경영폴란드 같은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같은 전략을 펴서 성공했다. 공산주의 체제하의 국영기업들은 모두 부실했다. 선진국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해서 살리겠다는데 대우는 구조조정 대신 오히려 생산을 확장해서 살리겠다고 하니 모두들 좋아했다.하지만 그건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일이었다. 빚이 많기 마련이었고 그것을 갚기 위해 늘 열심히 팔아야 했다. 삐끗하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었다. 그 위험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닥쳤다. 환율이 올라서 대우의 빚은 눈덩이처럼 늘었다. 호랑이 등에서 떨어진 것이다. 김우중은 정부와 은행들에 잠시만 편의를 봐주면 수출을 늘려서 빚을 다 갚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정부와 은행들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부도가 났고 대우는 무너졌다. 김우중과 대우를 멀리까지 데려다 준 그 호랑이에게 물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우중은 위대한 기업가였다.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뼈아픈 정부실패…고비용·저효율 구조가 만든 'IMF 위기'
세계 경제사

뼈아픈 정부실패…고비용·저효율 구조가 만든 'IMF 위기'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거시경제 지표는 양호했음에도 1987년 이후 높은 임금상승과 노사갈등으로 인한 고비용-저효율 구조, 그리고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과 규제로 인한 경제구조 왜곡이 근본 원인이었다. 기업 채산성 악화로 연쇄 부도가 발생하고 금융회사 부실화로 이어지면서 외환위기가 촉발되었으며, 1996년 노동관계법 개정 무산은 자율 구조조정의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정부 규제와 개입이 오히려 증가하여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잠재하고 있으므로, 경제 회생을 위해서는 작은 정부와 시장 자율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2014.06.19

경제! 오해와 진실
커버스토리

경제! 오해와 진실

경제 성장이 반드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저성장이 양극화의 주요 원인이고 일자리 창출이 가장 효과적인 복지라는 점을 강조한다. 가난 탈출은 국가 지원보다 개인의 근로의욕과 안정적 일자리가 중요하며, 무역 흑자는 과도하면 환율 상승과 물가 상승을 초래하므로 적정 규모 유지가 바람직하다. 자유무역은 경제력 격차와 관계없이 개도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 이익을 주는 비교우위 원칙에 따른 것으로, 선진국이 오히려 개도국과의 경쟁을 우려해야 한다.

2007.02.28

달러의 경제학
커버스토리

달러의 경제학

달러는 세계 금융·통화의 중심으로서 국가 부의 척도이자 국제 거래의 기본 결제 수단이며, 환율 변동을 통해 각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가 예산 수립과 기업 경영 계획 수립 모두 달러 환율 전망을 전제로 하므로, 달러를 이해하지 못하면 경제 흐름을 파악할 수 없다. 유로화 출범 등으로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지만, 국제경제 질서가 달러 중심으로 유지되는 한 달러의 영향력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007.01.17

2635세대 뜬다

사상.이념엔 무관심...개인주의 무장

2635세대는 풍요로운 성장기와 민주화된 사회를 물려받아 사상·이념에 무관심하고 개인주의로 무장한 세대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현실주의를 익혀 개인의 경력과 재테크에 집중하고 정치보다는 경제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386세대의 집단적 투쟁과 달리 이들은 개인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며 정치적 허무주의 속에서 다양한 성향을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2006.01.03

달러시대 막 내리나
커버스토리

달러시대 막 내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기축통화로 군림해온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달러화가 유로화와 엔화에 대해 각각 10%, 6% 하락했으며, 페그제 폐지 확산, 원유 수출 대금의 다양화 추진, 유명 인사들의 유로화 선호 등으로 달러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워런 버핏, 짐 로저스 등 투자 거장들도 달러 약세를 지적하며 달러 자산 축소를 권고하고 있다.

2008.03.05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