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법을 만드는 것도 법치주의를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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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법을 만드는 것도 법치주의를 해친다

강현철 기자2010.09.08읽기 6원문 보기
#법치주의#법치의식#입법의 과잉#규제법#유전무죄 무전유죄#전관 예우#헌법소원#사법부의 정치화

물질만능·연고주의, 법 의식 약화시키는 독버섯 현대판 음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외교통상부 고위 관료 자녀의 특혜성 취업은 우리 사회에 법치의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왜 우리에겐 지도층이건 일반 시민이건 법치의식이나 윤리의식이 부족한 것일까. 그건 우리 국민들이 타고날 때부터 공공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법이나 윤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한걸음 나아가 법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를 보면 사회적 시스템 때문이다. ⊙ 입법의 과잉일각에서는 우리 국민들에게 법치의식이 부족한 것을 일제의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모든 법은 악법이며 지켜선 안된다는 의식이 자리잡았고 이게 오늘날까지도 법 경시 풍조를 낳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해방된 지 60년인데 아직까지 식민지 시대의 의식이 남아 있을리 없고,더구나 식민지 시대 이전엔 법치의식이란 것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법 부동산 투기나 자녀를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한 위장전입 등등…. 고위 공직자 후보들이 청문회 때마다 시비에 걸리는 불법 행위들이다. 공직자로서 도덕성에 흠결이 있으면 안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둘러 보면 이렇게 법을 어긴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는 역설적이지만 법의 숫자,특히 '이런이런 건 해선 안된다'는 규제법이 많은 것도 원인 중 하나이다. 법을 만들 때는 미리 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한데 그런 환경 조성 없이 엄격한 금지법만 만들어내는 바람에 범법자를 양산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18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률안만도 거의 5000건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국민 생활을 규제하고 민간의 자율을 억제하며,행정이나 정치 편의주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뭐를 지켜야 하고 뭐는 하면 안되는지를 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법에 대한 무시,법 의식의 실종이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법을 만들고 집행해야 할 입법부나 사법부가 법 경시 풍조의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는 법을 각 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귀에 걸면 귀고리,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제멋대로 해석한다. 정치인 비자금 수사 과정이나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등에서 여당과 야당 의원들이 내 편이라면 봐주고 반대 편이라면 죽이는 일은 일상사가 됐다. 법적 잣대가 다른 풍경이 TV를 통해 생중계되니 국민들로선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란 생각을 무의식중에 갖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같은 국회의원의 범법에는 관대하고 고위관료 등에겐 추상같은 국회의 야누스적 모습도 법치의식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 유전무죄 · 무전유죄?법의 권위를 세워야 할 사법부도 책임이 없지 않다. 우리 사회엔 돈이 있으면 죄를 짓더라도 무죄를 판결받고,반대로 돈이 없으면 죄가 없더라도 유죄라는 분위기가 여전히 팽배하다. 전직 고위 법관이나 검사가 변호사로 소송에 참여하면 승소하는 경우가 많은 사례(전관 예우 관행)라든지 역시 퇴임한 고위 관료가 로비스트로 일하는 로펌에 소송을 맡기면 승소 가능성이 높은 게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의식을 갖게 한다. 사법부가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전교조 조합원이나 공무원 노조원의 정치 행위에 대한 판결처럼 판결 자체가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국회에서 풀어야 할 사회적 갈등이나 정치적 이슈를 법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는 것으로,법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각종 위헌 소송이 넘쳐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헌법소원은 2007년 무려 1742건에 달했으며 매년 1000건이 넘고 있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윤리교육과)는 "사법부의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정치적 사건에 대한 판결을 계기로 사법부의 이념화와 정치화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정기화 전남대 교수(경제학)는 "민주 시민은 누구나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지만 해당 정책이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선 관심이 적다"며 "개인의 이익을 위한 투쟁만이 남고 책임이나 의무는 귀찮은 존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가 미흡하고 그마저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법원의 최종 판결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갈등을 제도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사라지고 만다"고 주장했다. ⊙ 고속성장에 따른 물질 만능주의한국은 짧은 기간에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룬 세계에서 유례없는 모범국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같은 고속 압축성장은 물질 만능주의를 낳았다. 법을 어기더라도 땅이나 아파트를 사고 주식에 투자하면 수배,수십배의 이익을 챙길 수 있으니 한탕주의와 탈법이 적지 않았다. 투기로 돈을 번 사람들은 "남들도 다 하는데"라고 변명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떨어뜨리고 법 경시 현상을 초래했다. 우리 사회가 지연 학연 혈연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법의식 결여의 한 요인이다. 원칙이나 능력보다는 어디 태생이고 어느 학교 출신이라는 게 인사나 승진의 기준이 되고 같은 지역이나 학교 출신들끼지 똘똘 뭉치니 법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다.

김인섭 변호사는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뤘지만 다양하게 분출되는 구조적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는 법치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탓에 막대한 국력을 소진하고 있다"며 "연고주의 문화는 법과 제도를 경시하고 부정부패를 양산함으로써 법의식 발달을 억누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치주의를 정착시키려면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엄정하고 공정한 법 집행이 선결과제라고 덧붙였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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