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네덜란드, 벨기에를 점령한 독일은 프랑스 영토의 3분의 2까지를 손에 넣은 이후 영국 침공을 감행하였다. 1940년 8월, ‘바다사자 작전’으로 불리는 영국 상륙작전은 해상에서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승부의 분수령이었던 항공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 독일은 영국의 막강한 공군력에 밀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첫 번째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영국과의 항공전을 통해 무력으로 영국을 제압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 독일이 새롭게 내세운 방법은 폭탄이 아닌 화폐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베른하르트 작전’이라 불린 이 작전의 주된 골자는 영국 파운드화의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만들어 영국 경제를 붕괴시킨다는 것이었다. 독일 재무성은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 가운데 위조지폐 기술을 가진 30여명의 유대인을 선발해 최고 대우를 해주며 위조지폐를 만들게 했다.
당시에 제작된 위폐는 실제 영국 중앙은행의 정밀감정에서도 진품으로 판명받을 만큼 정교했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모가 약 1억4000만파운드, 한화 기준으로 12조원가량으로 당시 영국 국고에 저장된 돈의 4배에 달하는 양이었다고 한다. 베른하르트 작전은 독일군 내부의 의견 충돌로 실패했지만, 제작된 위폐는 지하경제를 통해 영국으로 흘러들어가 영국 파운드화의 절반 가까이가 위폐로 채워졌고, 영국 정부는 신권 교체를 통해 사태를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위조지폐, 국가경제 신뢰 파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폐범에 대한 처벌은 엄격하다. 위조지폐의 경제적 파급력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위폐범을 사형시킨 이후 토막을 내 버리는 것으로도 부족해 그의 가족들까지도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지는 형벌을 내렸다.
우리나라 현대사에도 위조지폐 사건이 종종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광복 당시에 있었던 ‘조선정판사위폐사건’이다. 당시에도 위조지폐 주범은 무기징역을, 조력자들은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위조지폐범의 처벌에 대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화폐를 쓰는 국가들은 위조지폐에 매우 민감하다. 위조지폐는 돈을 타락시켜 국가 전체의 신뢰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경제 체제 자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화폐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실제 ‘1000원’이라고 명명된 종이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그 종이로 1000원어치의 물건과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이를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에서 화폐의 기능은 이러한 신뢰 위에서 성립되었다. 대표적인 화폐의 기능은 ‘교환의 매개수단’이다. 화폐가 존재하지 않던 물물교환 경제에서는 원하는 상품을 찾기 위해서 거래 상대방을 찾아다녀야 했으며, 적합한 상대방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상대방이 내가 가진 상품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거래가 성립되지 않았다.
거래에 있어서 엄청난 거래비용이 수반되는 것이다. 하지만 화폐의 존재로 이러한 탐색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게 됐고 경제 전체적으로는 소비량과 생산량이 증가해 보다 풍족한 생활이 가능해졌다. 두 번째 기능은 ‘가치 척도의 기능’이다. 이는 화폐를 쓰는 경제에서 모든 상품의 가치가 화폐 단위로 표시된다는 의미이다. 사회구성원이 모두 신뢰하는 화폐로 상품의 가치를 화폐 단위로 표시하면 상품 가치를 판단하고 거래하는 데 편리하다.
국가기능 마비시킨 ‘초인플레’
화폐는 ‘가치저장의 기능’도 갖고 있다. 이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능력이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밀가루 생산업자는 밀가루를 창고에 두었다가 다음해에 팔아서 생활비를 충당할 수도 있지만, 밀가루를 생산한 해에 바로 팔고 받은 돈을 다음해 생활비로 활용하는 편이 낫다.
밀가루는 저장과정에서 품질이 저하되어 다음해 판매시점에서 더 적은 값을 받을 수도 있지만, 사회구성원 간의 합의로 결정되는 화폐의 명목가치는 다음해에도 여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위조지폐는 이처럼 사회구성원의 신뢰 위에 세워진 화폐경제를 타락시킴으로써 경제 내에서 행해지는 크고 작은 교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