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선이란 특정 경제 주체가 가용할 수 있는 소득의 전부를 지출하여 구입할 수 있는 재화의 묶음을 표시한 선이다. 우리는 제한된 소득 하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일련의 재화 묶음들을 이러한 예산선의 범위 안에서만 결정할 수 있다. 예산선이 바뀌어 우리의 선택의 범위가 달라질 경우는, 우리의 소득이 증가하여 보다 다양한 선택의 폭을 갖게 되었을 때이거나 주어진 재화의 가격이 변화하여 이로 인해 구매할 수 있는 재화의 묶음이 달라질 때뿐이다. 따라서 경제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주어진 예산선의 범위 안에서 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만족을 가져다주는 재화의 소비 묶음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결국 예산선이 어떻게 주어졌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소비 행태와 더 나아가 우리가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의 크기를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제약조건인 것이다.
예산선은 근본적 제약
인류의 문화를 보면, 특정 국가 내지 민족들이 자신들이 직면한 제약조건 하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결산물인 경우가 많다. 바로 옆에 나란히 위치한 이웃나라인 영국과 프랑스의 음식문화가 상이한 것 또한 여기에 기인한다.
우리는 모처럼 멋진 저녁 식사를 계획할 때 후보군 중 하나로 프랑스 요리를 올려놓곤 한다. 하지만 영국 요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영국 요리는 남다른 요리 문화라 칭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그 화려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우수한 음식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영국을 방문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요리가 얼마나 형편없는 수준인지 놀라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영국인들은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 일부러 형편없는 요리들을 먹고 있다는 유언비어까지 만들어졌을 정도이다.
영국이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식문화를 갖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요리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선택의 영역인 제약조건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기후가 농산물을 생산하기에 적합한 기후가 아니다. 때문에 단위 면적당 산출량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보다 떨어지는 상황이며, 기후마저도 적합하지 않아 자신들을 대표할 와인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영국에서 만든 빵 또한 밀의 품종이 좋지 못해 맛이 별로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산출량이 풍족하지 못한 식자재를 갖고 다시 말해 열악한 예산선 속에서 다양한 요리를 개발하기 위해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본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쉽게 허락되는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쾌적한 기후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유럽 대륙 사람들과는 달리 영국인에게 먹는 것이란 귀한 것이었으며,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먹는 것은 문화 내지 레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행위로 인식했던 영국인들이 광활한 식민지를 얻게 되었을 때, 원활한 식자재를 생산하기 위해 플랜테이션을 도입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식민지의 광활한 영토란 오랫동안 부족하기만 했던 식자재를 원활히 확보하기 위한 대상이었을 뿐이지, 음식문화를 만들어 나갈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음식을 자원으로 여겨왔기에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방식으로 ‘식’문화를 이끌어 건 것이다.
영국인의 후예들이 세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패스트푸드 문화가 만들어진 것 또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설명된다. 영국인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미국인에게 식자재란 다양한 요리 문화를 만들어 내는 기초 재료로 인식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손실 없이 빠른 시간 내에 요리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결국 미국인들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공산물을 만들어내듯이 패스트푸드라는 요리 아니 음식자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영국과 미국이 음식을 문화 내지 레저가 아니라 자원으로 인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오랫동안 음식물에 대한 열악한 제약조건 속에서 살아왔던 그들의 상황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다.
음식을 '자원'으로 여긴 영국
반면, 프랑스는 오늘날에도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농산물 수출국일 정도로 농산물을 생산하기에 풍족한 토양과 기후 환경을 갖추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자연 환경 덕분에 프랑스인이 직면한 먹는 문제에 대한 예산선 내지 제약조건은 선택의 범위가 넓었다. 때문에 다양한 고민과 조합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이것이 프랑스가 오늘날과 같은 우수한 음식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지금도 프랑스는 패스트푸드 문화를 단순히 배만 채우기 위한 비문화적인 행태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국에 맥도날드가 널리 퍼지는 것을 가장 크게 저항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며,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외국 정상과의 자리에서 “음식이 맛없는 나라의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고 언급하여 물의를 빚은 일화도 있으며, 프랑스 국민들 또한 영국, 독일 등 인근 국가의 요리들은 농민의 요리로 치부하며 자신들의 요리가 상류사회의 요리라고 칭송한다. 이처럼 프랑스는 요리를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고 있는 나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