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미국에서는 셀마 헤이엑 주연의 <프리다>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프리다>는 18살 때 끔직한 교통사고를 당해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던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ㆍ1907~1954)의 생애를 그린 전기영화로, 2003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곡상과 분장상을 수상했다. 프리다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녀의 재능만은 아니다. 프리다를 거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ㆍ1886~1957)이다. 리베라는 활발한 벽화운동을 전개하여 멕시코의 국민화가라 할 만큼 높은 명성을 떨쳤고, 공산주의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주로 공공건물의 벽면에 벽화를 그렸으며, 멕시코 역사를 시대순으로 그린 대통령궁의 대형 벽화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위의 그림은 대통령궁 벽화 중 일부로, 스페인의 아스텍 침략(1519~1521)을 주제로 하고 있다.
아스텍 왕국의 멸망
리베라가 벽화를 통해 묘사한 상황은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ㆍ1485~1547)의 멕시코 베라크루스 도착이다. 코르테스는 1519년 600명의 원정대를 거느리고 멕시코 동쪽 해안에 상륙했고, 불과 1주일 만에 아스텍 왕국을 장악했다.
벽화 좌측 상단을 보면 십자가와 수도승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승 옆에서 칼을 들고 서있는 등 굽은 남자가 바로 코르테스이다. 뒤쪽에 위치한 나무에는 원주민들이 참혹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으며, 살아 있는 원주민들은 스페인 병사들의 핍박을 받고 있다. 벽화 좌측 하단에는 원주민에게 낙인을 찍는 모습도 보인다.
스페인 병사들의 약탈과 살육이 멕시코 땅에 큰 상처를 남겼음은 당연하다. 찬란한 아스텍 문명은 종적을 감추고, 원주민들은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같은 고통은 스페인의 침략을 받은 다른 중남미 국가들에게도 공통적으로 해당한다. 물론 잔혹한 침략 행위가 스페인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영국 등의 국가도 식민지 건설 과정에서 많은 원주민을 살해했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여러 자원을 빼앗아 갔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 이후 중남미와 북미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의 중남미 국가들은 북미보다 훨씬 더 발전된 문명을 향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난 몇 세기 동안 중남미 국가들은 북미에 비해 더딘 경제성장을 보였다. 북미와 중남미가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북미와 중남미의 두 길
북미와 중남미의 경제발전 차이를 설명하는 이론은 매우 다양하다. 종속이론을 신봉하는 학자들은 미국 등 선진국들이 중남미 국가를 착취하기 때문에 격차가 벌어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종속이론은 북미와 중남미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 큰 설득력이 있고, 과거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더글라스 노스(Douglass Northㆍ1920~ ) 등의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해 기존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내놓아 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노스는 중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고, 북미 국가들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것이 아메리카 대륙 남북 격차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스페인은 절대왕정 시절 막강한 해군을 바탕으로 세계를 호령했지만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중상주의에 근거해 식민지로부터 금과 은을 들여오는 데 열중했다. 따라서 스페인에서는 산업 발전과 인프라 구축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또한 스페인은 강력한 왕권 탓에 근대적 재산권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뒤늦게 형성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재산권 확립과 산업화를 일찍 이루어냈다. 스페인과 영국의 차이는 정치체제에서도 드러난다. 스페인은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오래 유지한 반면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기반으로 한 의회 정치를 발전시켰다.
이 같은 제도의 차이는 18, 19세기에 두 국가의 경제 격차를 크게 벌려놓았다. 북미는 영국의 성공한 제도를 받아들이고, 중남미는 스페인의 실패한 제도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후손들의 운명이 갈리게 되었다는 것이 노스의 주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