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와 제도경제학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49)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와 제도경제학

박정호 기자2012.01.25읽기 7원문 보기
#제도경제학#종속이론#더글라스 노스#재산권#중상주의#입헌군주제#산업화#식민지배

2002년 미국에서는 셀마 헤이엑 주연의 <프리다>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프리다>는 18살 때 끔직한 교통사고를 당해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던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ㆍ1907~1954)의 생애를 그린 전기영화로, 2003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곡상과 분장상을 수상했다. 프리다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녀의 재능만은 아니다. 프리다를 거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ㆍ1886~1957)이다.

리베라는 활발한 벽화운동을 전개하여 멕시코의 국민화가라 할 만큼 높은 명성을 떨쳤고, 공산주의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주로 공공건물의 벽면에 벽화를 그렸으며, 멕시코 역사를 시대순으로 그린 대통령궁의 대형 벽화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위의 그림은 대통령궁 벽화 중 일부로, 스페인의 아스텍 침략(1519~1521)을 주제로 하고 있다. 아스텍 왕국의 멸망리베라가 벽화를 통해 묘사한 상황은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ㆍ1485~1547)의 멕시코 베라크루스 도착이다.

코르테스는 1519년 600명의 원정대를 거느리고 멕시코 동쪽 해안에 상륙했고, 불과 1주일 만에 아스텍 왕국을 장악했다. 벽화 좌측 상단을 보면 십자가와 수도승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승 옆에서 칼을 들고 서있는 등 굽은 남자가 바로 코르테스이다. 뒤쪽에 위치한 나무에는 원주민들이 참혹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으며, 살아 있는 원주민들은 스페인 병사들의 핍박을 받고 있다. 벽화 좌측 하단에는 원주민에게 낙인을 찍는 모습도 보인다. 스페인 병사들의 약탈과 살육이 멕시코 땅에 큰 상처를 남겼음은 당연하다. 찬란한 아스텍 문명은 종적을 감추고, 원주민들은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같은 고통은 스페인의 침략을 받은 다른 중남미 국가들에게도 공통적으로 해당한다. 물론 잔혹한 침략 행위가 스페인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영국 등의 국가도 식민지 건설 과정에서 많은 원주민을 살해했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여러 자원을 빼앗아 갔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 이후 중남미와 북미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의 중남미 국가들은 북미보다 훨씬 더 발전된 문명을 향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난 몇 세기 동안 중남미 국가들은 북미에 비해 더딘 경제성장을 보였다.

북미와 중남미가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북미와 중남미의 두 길북미와 중남미의 경제발전 차이를 설명하는 이론은 매우 다양하다. 종속이론을 신봉하는 학자들은 미국 등 선진국들이 중남미 국가를 착취하기 때문에 격차가 벌어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종속이론은 북미와 중남미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 큰 설득력이 있고, 과거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더글라스 노스(Douglass Northㆍ1920~ ) 등의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해 기존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내놓아 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노스는 중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고, 북미 국가들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것이 아메리카 대륙 남북 격차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스페인은 절대왕정 시절 막강한 해군을 바탕으로 세계를 호령했지만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중상주의에 근거해 식민지로부터 금과 은을 들여오는 데 열중했다. 따라서 스페인에서는 산업 발전과 인프라 구축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또한 스페인은 강력한 왕권 탓에 근대적 재산권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뒤늦게 형성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재산권 확립과 산업화를 일찍 이루어냈다. 스페인과 영국의 차이는 정치체제에서도 드러난다.

스페인은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오래 유지한 반면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기반으로 한 의회 정치를 발전시켰다. 이 같은 제도의 차이는 18, 19세기에 두 국가의 경제 격차를 크게 벌려놓았다. 북미는 영국의 성공한 제도를 받아들이고, 중남미는 스페인의 실패한 제도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후손들의 운명이 갈리게 되었다는 것이 노스의 주장이다. 경제를 좌우하는 제도의 힘노스의 주장은 제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노스에 따르면 사회에서 제도는 게임의 규칙과도 같다. 제도는 사람들의 행위를 결정하고,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제도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제도의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적 조류를 말한다.

전통 경제학은 경제현상을 분석할 때 제도를 주어진 것으로 보고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19세기 말 탄생한 제도경제학은 전통 경제학에서 무시되었던 제도를 경제분석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경제학의 영역을 넓히는 데 공헌했으며,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제도경제학은 그 이후 체계적인 이론체계를 수립하는 데 실패했다. 일부 제도경제학자들이 이론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까지 보이면서 제도경제학은 점점 그 신뢰를 잃게 되었다. 이 때문에 1950~60년대 이르러 제도경제학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어지고, 제도경제학은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올리버 윌리엄슨(Oliver E. Williamson)이 주도한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적 접근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일각에서 다시 제도 연구의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제도경제학은 1980년대 후반 부흥기를 맞이한다. 제도경제학자들의 잇따른 노벨경제학상 수상(1991년 로널드 코즈, 1993년 더글라스 노스, 2009년 올리버 윌리엄슨)은 제도경제학의 달라진 위상을 방증한다. 제도경제학 연구는 과거에 기존 경제이론을 보완하는 정도로 인식되었지만, 다양한 연구들이 이루어지면서 최근에는 경제학의 영역을 넓히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제도경제학에는 여러 가지 흐름이 존재하고 방법론상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학파로 묶어서 논의하는 데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다양한 스펙트럼 간의 접목을 통해 통일된 이론체계를 확립한다면 더욱 더 발전하는 분야가 될 것이 분명하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hmkim@kdi.re.kr 경제용어 풀이▶ 제도경제학 (institutional economics)인간이 만든 제도가 경제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학문적 조류이다. 창시자는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렌(Thorstein Veblenㆍ1857~1929)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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