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고 요약되는 숫자정보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숫자만 나오면 자신 없어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숫자에 주눅이 드는 예는 화술에 관한 책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화술에 관한 책 속에는 '숫자를 써서 공격하라''숫자의 권위를 이용하라'는 내용의 장(章)이 있다.
상대방의 공박을 잠재우고 좀 더 설득력 있게 보이는 테크닉으로서 숫자가 필요할 때마다 인용하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 숫자가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상대방은 대개의 경우 숫자에 자신이 없어 반박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다음의 인용문은 이런 경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인간현상도 양적인 언어로 풀이하면 뭔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런 효과를 노려서인지 모르겠으나 유난히 숫자를 잘 암기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공식적인 담론에서는 물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에도 그 수치들을 즐겨 인용한다.
그의 이야기는 늘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듯이 여겨지고 그래서 항상 힘을 지닌다.
그의 주장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다양한 자료를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실을 말하면서도 통계수치를 동원하면 더 과학적이고 정확한 것처럼 들린다."(김찬호,사회를 본다 사람이 보인다,고려원미디어,1994,82쪽)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다른 어떤 과목보다도 수에 관련된 것들을 많이 배워 왔으면서도 간단한 숫자에도 자신 없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숫자에 자신 없어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전통적인 관습에서 찾을 수 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양반전'에 의하면 양반은 "손으로 돈을 만지지 말며 쌀값을 묻지 않는다"고 했다.
상업을 천하게 여기는 사회 속에서 수리적인 지식은 양반이 갖춰야 할 교양에 들지 못하였고 마을 서당에서도 수에 관한 지식은 일절 가르치지 않았다.
이렇게 숫자를 무시하는 관습은 현재까지 이어져 숫자를 따지는 사람은 쩨쩨한 사람이 되고 숫자를 다룰 때 실수를 하면 오히려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이나 한 듯이 떳떳해하는 경우도 있다.
숫자에 자신이 없어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수학교육이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등학교까지 수에 관련된 과목을 다른 어떤 과목보다도 많이 배웠으면서도 숫자 얘기만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깜깜해 한다는 사실이 이를 간접적으로 입증해 준다.
물론 수학적인 계산은 맞지 않으면 틀리는,즉 약간의 융통성조차 없어 차가운 느낌을 주고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숫자에 자신이 없어 한다.
"숫자를 왼다든지 가령 집 주소,전화번호 따위,사람의 이름,무슨 지명,사무적인 것,계산을 필요로 하는 것 등 캄캄절벽이 될 때가 많지요."(박경리,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현대문학,1995,117쪽)